천년 9월24일. 우리 교도가 정성스레 준비하고 그토록 기다리던 정산종사 탄백기념대회를 맞는다. 원불교는 소태산 대종사님과 제자 정산종사의 기다리던 만남으로 결실되었다. 정산종사는 일평생 일호의 사심없이 스승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면서 법치교단을 조직화하고 제생의세의 대종사 유업을 계승 발전시켰다. 대종사님은 하늘이요 태양이요 영부이시라면, 정산종사는 땅이요 명월이요 법모이시다.

이번 기념행사는 그간의 접근과 달리 정산종사님에 오롯이 초점을 맞춰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평가하는 범교단 차원의 첫 행사이다. 이 뜻깊은 행사를 통하여 정산종사의 큰 경륜, 업적, 성품을 재조명함으로써 원불교 안의 한 성자에서 한국의 큰 성자, 세계의 성자로 세상에 드러내는데 그 의의가 크다. 대종사님께서도 제자 송규가 세계적인 성자로 빛보게 되어 크게 기뻐하실 것이고, 원불교는 짧은 교단사에 큰 성자 두 분을 세상에 드러내게 되는 것이니 범교단적인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범교단적으로 추진해온 ‘정산종사 닮아가기’ 운동도 이제 재정립이 필요하다. 이 운동은 원불교 내에서 성자의 거룩한 삶을 추모하고 보은하며 닮아 가는 한계를 이제 뛰어 넘어야 한다. 우리사회가 닮아가야 할 참 인간상을 그려 보여야 한다. 정산종사님의 “풍류로써 세상을 건지리라”하신 뜻을 되새겨 영육쌍전 속에 도(道)와 기(技)와 예(禮)를 갖추고 풍류의 여유를 지닌 21세기의 새 시민상을 제시함직하다. 우리 사회는 과거의 개발년대를 통하여 형성된 빨리빨리병·초급병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돈과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졸부가 행세하는 세상이라, 이제 우리 사회가 한때 배척했던 옛날의 훌륭한 선비상을 오늘날에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풍류 넘치는 선비상의 좋은 점을 살리면 영국의 자랑하는 신사도 보다 낫지 않을까. 그 옛날의 선비상에서 쟁이 천시풍조 등 부정적인 점을 버리고, 정산종사님을 ‘모델’로 함으로써 도와 풍류는 물론이고 21세기 새 시대에 부합되는 전문지식과 선진기술의 기를 두루 갖춘 새 선비상을 부각시키고 이를 닮아가는 시민운동으로 승화시켜보자는 것이다. 정산종사! ‘한국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잊을 수 없는 사람, 안병욱)이오, 덕과 풍류는 물론이고, 법치교단의 조직화와 『건국론』등에서 나타난 바와같이 전문지식까지 두루 갖춘 성자시니, 어찌 이 시대의 새 선비상을 달리 찾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교단 안으로 정산종사 닮아가기를 계속하면서 밖으로는 도와 기와 풍류와 예를 갖춘 정산종사 ‘모델’의 선비운동으로 발전시켜 보면 어떨까.

정산종사님은 세계를 향하여 삼동윤리를 제창함으로써 일원주의의 한 세계를 지향하면서 안으로는 우리나라가 세계 1등 문화국으로 가는 길과 방편으로 『예전』과 『세전』을 밝히고 있다. 다른 종교의 경전에는 『예전』과 『세전』같은 별도의 장을 두고 있지 않다. ‘예’는 개인의 인격 고양의 요체로서 폭넓은 사회규범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일원문화와 예를 갖춘 세계 1등 문화국의 지향은 우리나라가 도덕 중심국으로 가는 환경조성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 월드컵의 지구촌 큰 잔치를 앞두고 세계 1등 문화국임을 국내외에 자연스레 드러낼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는 시점인지라 이 기회를 앞두고 범국민적인 문화·예의운동이 절실하다. 특히 인접한 일본과의 비교가 전세계의 전파속에 실시간으로 생생히 드러나기 때문에 더욱 시급하다. 이 문화·예의운동은 정부(문화관광부)의 후원과 많은 NGO의 협조속에 우리 종단의 주도로 범국민적인 ‘캠페인’을 전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정산종사의 삼동윤리는 21세기에 밤낮없이 실시간으로 거래되는 지구마을의 ‘한 울안’ ‘한 집안’ ‘한 일터’에 보편타당한 윤리요 인류구원의 빛이다. 이 삼동윤리는 대산종법사님의 종교UR구상을 통하여 세상에 드러나고 있고 UN에서도 보편윤리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여건의 조성속에 우리의 문화·예의운동은 원불교 내의 운동에서 우리나라의 범국민운동으로 승화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삼동윤리를 체로 삼고 종교UR에 더하여 가칭 ‘삼동문화·예의운동’의 범세계적인 ‘캠페인’부터 추진해 봄직하지 않을까.

정산종사의 『건국론』도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후 남과 북을 각기 지배해 온 가치체계의 혼돈을 경험하고 있고 통일을 향한 국가체제의 모색을 위해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마당이라 건국론 발표즈음의 국론분열과 흡사한 여건이 생기고 있다. 『건국론』의 모든 주창이 그대로 새 여건에 적합하지는 않을지 모르나, 그 골격에 해당되는 민주주의와 중도주의의 기본 강령과 공화(共和)제도는 남북통일을 통한 새건국의 국가강령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은 한쪽의 완승을 기대할 수 없다. 세계의 대세가 되고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골격은 유지하되 그 토대 위에 중도적 타협이 불가피한 것이다. 정산종사의 공화제도는 남북한의 연방론내지 민족공동체를 뒷받침하고 평등주의와 자유주의의 조화를 꾀하는 이론적 주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18(원기3)년 4월 소태산 대종사님과 정산 송규 종사의 정읍 화해리의 만남, 그 기다리던 만남은 교단사적인 큰 의의가 있다. 대종사님께서도 “이 사람이 와야만 내가 할 일이 되어지는데,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성사되는데…” 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만남이다. 이 교단사적인 만남을 4축2재에 버금가는 ‘만남의 날(祝日)’로 기릴 필요가 있다. 이 만남의 날은 인과와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상생의 좋은 만남을 북돋우는 세속의 ‘이벤트’로 쉽게 진전될 소지도 크다. 영호남의 만남, 남북의 만남도 촉진될 것이고, 서양의 ‘바렌타인 데이’ 같은 상업화·세속화도 기대된다.

이번의 기념대회를 통하여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종사의 그 기다리던 만남의 의의를 부각시키고, 정산종사님을 한국의 성자, 세계의 성자로 옳게 평가받게 함으로써 원불교가 ‘호남종교’라는 그릇된 인식을 불식시키고 전국적으로 고른 교세확장, 특히 상대적으로 교세가 약한 경북등 영남권의 교세 신장에 적잖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의 성지장엄사업, 대안학교, 원음방송 등 대대적인 기념사업도 이의 상승요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끝으로, 정산종사의 이와같은 사회지향적인 재조명은 좌산종법사님의 ‘밖으로 미래로 사회로 세계로’의 표방을 내실있게 추진하고 아울러 교화의 사회성을 강화함으로써 원불교의 사회교화에 큰 전기가 이뤄지게 하고 원불교 교화에도 새 ‘붐’이 일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원남교당, 해양문화재단 이사장>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