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요, 역사학이란 역사 속에서 우리들이 영위해 온 삶의 방식에 관한 이론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그 원인에 따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이 바로 역사학이다.

사람들은 이 같은 과학적 역사인식 방법을 몸에 익힘으로써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거짓과 허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또한 이 같은 과학적인 역사 이해를 통해서 우리들은 비로소 자신의 판단에 따라 눈앞의 현실을 과학적으로 비판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향한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제의 사실상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100주년,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 치하에서 해방된 지 60주년, 현재의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단행한 지 40주년, 그리고 자주적이며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할 것을 약속한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진 지 만 5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이 같은 2005년을 맞이하여 우리 사회는 올바른 과거청산, 즉 왜곡된 과거사를 정리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과거사 관련 4대 특별법 제정으로 상징되는 과거청산은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고 친일파가 국가유공자로 뒤바뀐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를 바로잡기 위한 작업임과 동시에, 정신적인 불구상태였던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여 뒤틀린 민족정기를 제자리에 세우기 위한 시대적 요청이라 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과거청산은 비단 한국사회의 건강성 회복이나 민족정기 확립에만 그 의미가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오히려 ‘동북공정’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통하여 고구려 역사를 자국사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는 중국의 패권적 중화주의에 대한 경고임과 동시에,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과 가해(加害)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망언을 되풀이하면서 과거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다시 한 번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차단하고자 하는 의미를 함께 지닌다고 하겠다.

일찍이 중국 근대사상가의 한 사람이었던 뤼신(魯迅, 1881∼1936)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먹으로 쓰인 거짓말은 결코 피로 쓰인 진실을 가릴 수 없다. (중략) 피는 먹으로 쓰인 거짓말로도 지워지지 아니하며, 먹으로 쓰인 만가(輓歌)에도 취하지 않는다. 위력(威力)과 권세도 그것을 억누를 수는 없다.”

2004년 2월 9일 한국 국회에서는 세계사에 그 유례가 없는 특별법 하나가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동학농민혁명참여자등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바로 그것이다.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이 일본군에 의해 진압되어 좌절된 지 꼭 110년 만에 동학농민군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기로 한 이 특별법 통과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참된 진실은 끝내 거짓을 이긴다’ 또한 ‘먹으로 쓰인 거짓말은 결코 피로 쓰인 진실을 가릴 수 없다’ 역사학은 바로 이 같이 지극히 평범한 가르침을 몸에 익히게 해줌으로 나와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고, 한 나라와 민족을 건강하게 만든다.

과학적 역사학이 한 나라와 민족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면, 종교에 관한 역사를 과학적으로 배우고 가르치는 종교사(宗敎史) 역시 그 종교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학문이라 할 만하다.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원불교 역사를 ‘과학적으로’ 배우고 가르치는 교사(敎史) 역시 교단을 건강하게 만들고, 원불교 신자들의 정신적 건강을 증진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불교 교사를 어떻게 ‘과학적으로’ 배우고 가르칠 것인가? 원불교 교사를 어떻게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이해할 것인가? 우리 모두의 대(?)화두가 아닐 수 없다.

‘역사학은 모든 학문의 골키퍼이다’ 필자가 스물 몇 해 전 대학원생 시절에 모 교수님으로부터 받들었던 가르침이다. 원불교 교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원불교학의 골키퍼이다. 왜 원불교 교사를 원불교학의 골키퍼라 하는가? 이 역시 화두로 삼아 연마할 필요가 있다.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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