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당 건축 위해 250평 대지 매입, 내년 신축공사
까레이스끼 돕고 북한교화 위해 박청수 교무 설립
아프리카처럼 이곳 돕는 본격적인 법인체 필요

▲ 어렵지만 단결된 힘으로 매일 기도를 올리는 우스리스크교당 교도들.
▲ 우스리스크시 종교국으로 부터 자선·봉사 공로로 받은 감사장.
▲ 최근 매입하여 신축 예정인 교당 부지의 건물. 내년 이곳 250평의 대지에 3층 규모의 교당이 신축된다.
우스리스크는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던 고려인(일명 까레이스끼)들이 경제적 활력을 바라보며 다시 모여드는 중심지이다. 이곳에 고려인들의 삶을 위로하고 러시아인들에게 일원의 법음을 전파하는 개척교당이 자리잡고 있다. 우스리스크교당(교무 강은도)이 그곳이다.

고려인 강제이주의 아픔이

속초에서 17시간 동안 배를 달려 도착한 곳은 러시아의 첫 관문 자루비노항이었다. 자루비노를 떠나 우스리스크를 향해 3시간여를 달리자 라즈돌링이라는 곳에 당도했다. 우스리스크의 문전인 라즈돌링은 1937년 고려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바로 이곳 기차역에서 20만명에 달하는 고려인들이 태워져 시베리아를 횡단했던 것이다. 교당을 찾기 전 고려인들의 애환과 바로 직면한 것이다.

다시 30분을 달려 우스리스크에 도착했다. 현재 교당은 아파트 3채를 이어 법당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시내중심가인 메모리얼 광장 뒷편에 30평 정도의 단독주택이 딸린 250평의 대지를 매입했다. 추위가 풀리는 내년 5월쯤부터 3층 규모의 교당을 이곳에 신축할 예정이다.

우스리스크는 중국이나 북한과 연결된 철도편이 있으며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발인 관계로 최근 집값이 5배에서 최고 20배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 수요가 늘어나다 보니 집이 부족해 건축붐이 불고있어 자재비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교당 건축이 쉽지 않음을 예고하고 있으나 강은도 교무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루어 내고야 말 것”이라며 매일 기도와 더불어 긴장 속에 살고 있다.

극동 러시아 교화지

우스리스크교당은 강남교당 박청수 교무가 자신이 태어나던 해인 1937년에 강제 이주가 이루어졌음을 가슴 아파하며 원기85년(2000) 교당을 설립했다. 연해주의 고려인들에 대한 지원과 극동 러시아를 교화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지만 이곳은 중국의 훈춘·단동교당과 더불어 평양교구장인 박청수 교무가 통일에 대비한 북한교화의 전초지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고려인을 위해 세운 ‘고려인 우정 센터’가 있는 미할로프카도 우스리스크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올해는 고려인 러시아 이주 140돌이 되는 해이다. 제정 러시아의 극동진출 교두보인 블라디보스톡항이 개설된지가 145년이니 우리민족이 러시아에 진출한 것은 블라디보스톡의 개항과도 맞물려 있는 셈이다.

자력적 운영보다는 후원필요

세계 한인 이주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러시아 이주는 1864년부터 시작된다. 우리민족은 굶주림에 시달려 블라디보스톡 개항이후 러시아의 넓은 땅을 바라보고 두만강을 건넜고, 독립운동을 계속하기 위해 몰려 온 곳이 연해주 땅이다. 곳곳에 학교도 세우고, 한글로 신문·잡지도 만들었으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도 배출했다. 연해주는 항일투사들의 투쟁무대였고, 독립운동의 근거지였으며, 안중근 의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1937년 가을 스탈린은 하루 아침에 극동에 살고 있는 고려인을 한 명도 남김없이 화물차에 실어 중앙아시아(현재의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지) 초원과 사막에 내던졌다. 학교와 신문도 다 말소되었고, 인텔리들과 민족 사상가들은 학살되었다. 황무지에 버려진 고려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모래밭을 갈고 물을 끌어들여 폐허의 땅을 옥토로 만들어갔다. 그러나 국어가 러시아어이기 때문에 2세, 3세들은 모국어도 잊어버리고 점차 민족의 정체성도 사라져갔다.

고려인들은 옛소련이 붕괴되면서 언어도 바뀌고 민족간 감정도 날카로워지는 상황에서 더는 중앙아시아에서 살기 힘들어졌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중국의 훈춘, 북한의 나진·선봉이 경제 삼각특구로 개발된다는 정책이 발표되자 최근 15년간 이들은 또다시 조상들이 살았던 고향땅 연해주로 돌아오고 있다.

현재 사할린과 연해주에는 전 러시아 고려인 총수의 50% 가까이가 집중되어 있다.

우스리스크교당은 한화중·사진원·사연명 교무에 이어 올해 강은도 교무가 사령받아 개척교화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고려인과 현지인 교도들이 있으나 아직은 교당의 유지보다는 고려인들을 위해 쏟아야 할 비용이 더욱 많은 형편이다. 그리고 출가자 양산을 위한 조건도 무르익고 있어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이곳을 돕는 본격적인 법인체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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