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결산을 하느라 바쁜 생활을 보냈다. 회계 결산을 하는데 계산이 잘 안맞는다… 왜 안맞을까? 눈은 감겨오고, 그러나 결산은 맞춰야 된다는 생각에 감겨오는 눈을 비벼가며 새벽 2시까지 끙끙대며 맞추다가 결국엔 맞추지도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어~~~ 이렇게 하면 맞지 않을까, 그래 그거야… 잠을 자면서까지 결산을 맞추고 있었다.

무엇인가 하나에 골똘히 생각하면 이렇게 연마가 자면서 까지 되는 구나. 결산이라는 것에 끌려 자면서까지 연마하고 있는데 그러나 자칫 삼독심에 끌리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 집착의 세계로 빠져 고(苦)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됨에 새삼 마음을 챙겨보게 된다.

지금 내 마음이 오롯하게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나는 지금 사은님을 향해 방향을 잘 맞추어 가고 있는가를 잘 살펴본다.

지난 밤 학생 회원과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왜 사은님은 내가 힘들 때 나타나주지 않았을까요, 내가 힘들다고 했을 때 도와주지 않았을까요?”라는 질문을 해왔다. 사은님은 늘 우리 곁에 계시다고 하는데 막상 내가 찾아보려면 보이지 않고 꽁꽁 숨어 버릴 때가 있을까?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야 나오실까?

그 학생회원의 질문 속에 해답이 있었지만 ‘네가 죽을 만큼 힘들었기에 사은님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역으로 생각해 보기만을 중얼거렸다.

내가 좋은 것, 내가 싫은 것을 구분하여 놓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소리만 들으려하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에만 집착하여 실상 중요한 것은 놓치고 살지는 않는지… 삼독심과 인연에 끌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이제 부교무 3년차로 들어간다. 내가 좋은 하는 것 싫어하는 것에 분명한 선을 긋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임에 불구하고도 내가 싫어하는 것은 죽어도 하기 싫어하고 있다. 진리로 부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아집과 집착과 편견으로 나만의 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진리를 본받아서 그대로 행하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그 진리를 본받기 위해서는 진리를 내 맘속에 품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어미 닭이 알을 품듯이 진리, 사은님을 내 품안에 품어야 하는 것이다. 사은님이 안 계신다고 투정을 부릴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사은님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럼 바로 사은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종법사님이 내려주신 “모두 다 살려내자”는 법문은 바로 진리를 내 가슴에 온전히 품고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어느 하나만 안을 수 있는 가슴이 아닌 모두 다 품을 수 있는 넓은 가슴이 필요하다.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참 듣기 좋다. 이 빗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저 넓은 대지처럼 만 생령을 다 안을 수 있는 넓은 가슴이 되도록 마음을 활짝 펴본다.

<신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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