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품 7장

소태산께서 회상창립의 구체적 준비로 시작한 것이 바로 저축조합 운동, 방언공사, 혈인기도이다. 저축조합 운동은 1917년(원기 2년) 8월경에 시작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궁촌벽지 영광 길용리, 변변한 논배미 하나 찾아보기 어려운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당시 현실에서 회상창립의 뚜렷한 목적을 세우고 그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 갈 수 있는 살림살이를 구상 하게 된다. 즉 허무맹랑한 공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고 그 실현방법을 직접 지도하여 그 속에서 삶의 질을 향상하는, 새 종교생활운동을 시작하신 것이다. 당시 관 주도의 조합형태가 있긴 있었으나 소태산께서 제자들과 함께 이끄신 저축조합운동은 민간인에 의해 자발적으로 성립된 것으로 그 의의가 크다.

소태산은 제자들에게 교단창립의 정신적 자세로 특별한 인내와 노력 그리고 특별한 절약과 근로를 역설하시고, 스스로 조합장이 되어 제자 8인을 조합원으로 정관을 만들어 매월 저축금을 수납하도록 설득하시었으며, 그 설립취지에 “우리의 현금생활이 무산자 처지에 있으니, 의복 음식과 기타 용처에 특별한 소비절약이 아니면 단 몇 원의 자금을 판출하기가 어려울 것이다”라고 역설하셨다.

구체적 실천 방법으로 생명보호에 필요 없는 술, 담배를 끊고, 음식을 아껴 저축하며(금주금연), 매월 특별 노동일을 정하여 수입된 이익을 저축하고(공동출역), 각자의 부인들에게 끼니마다 한 숟가락씩 쌀을 모아 저축하도록(보은미 저축) 지도하셨다. 그리고 현재생활의 가난한 처지를 극복하고 사업의 토대를 세우기 위해 확고한 신념과 사명감으로 실천하여 후진에게 창립의 모범이 되자고 간곡히 촉구하셨다.

이를 통하여 소태산은 허례폐지, 미신타파, 금주단연, 근검저축, 공동출역의 새 생활 운동을 전개 하신 것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하에서 이루어진 경제자립운동, 농촌개혁운동, 인간개혁운동이었으며 소리 없는 국권회복운동이었다. 또한 길용리 일대 민초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며 실천의 힘을 길러 그들의 생활에 실질적인 큰 변화를 주었고, 영육쌍전, 이사병행 정신의 실천으로 원불교가 생활종교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물질이 넘쳐나는 이 시대, 우리 삶 속에서 면면이 이어져 그 빛을 발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화정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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