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하다고 했던 3만여 평의 갯펄이 대종사와 제자들의 피땀으로 드디어 이루어졌다. 처음 시작할 때는 평지에 태산을 쌓을 만큼 어려운 일이었으나, 대종사의 위대한 지도력과 제자들의 신성과 혈성으로 일심합력하여 이루어내고 보니, 물리적인 일은 이제 못 이룰 것이 없을 것 같은 자신감과 확신이 생겼다. 새 회상 창립의 경제적 기초를 확립한 것이다.

이제 제자들은 원래 목적인 도덕사업 즉 도를 이루어 새 회상을 이루어 가는 일이 얼마나 더 어려울지 두려웠다.

이에 대종사께서 “도를 이루는 법을 알고 보면 코 풀기도보다 쉽고 썩은 새끼 끊기보다 더 쉬운 일이다. 그 넉넉하고 한가한 심경이 어찌 저 언 막는 것같이 어렵겠는가” 하시며 제자들에게 자신감과 확신을 주고 공부심을 독려하며 창립의 정신적 내실을 다지신다.

도를 이루는 것이 코풀기보다 쉬운가? 사리연구의 목적에 보면 ‘이 세상은 대소유무의 이치로 건설되고 시비이해의 일로써 운전해 가나니, 세상이 넓은 만큼 이치의 종류도 수가 없고 인간이 많은 만큼 일의 종류도 한이 없나니라’ 하였다. 만사만리(萬事萬理)인데 그 길을 아는 것이 그렇게 코풀기보다 쉬운 일이겠는가? 생각해 볼일이다.

그러나 일원상 법어에 보면 ‘이 원상의 진리를 각(覺)하면 … 원만구족한 것이며 지공무사한 것을 알리로다’하였다. 그 원리를 깨치면, 진리의 작용을 알게 됨은 물론 육근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공부 길을 알지 못하면 눈앞에 보여주어도, 떠 먹여 주어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煩?(번뇌) 즉 보리(菩提), 보리(菩提) 즉 번뇌(煩?)이다. 즉(則)의 원리이다.

이 則의 원리이기에 코풀기 보다도, 썩은 새끼 끊기보다도 더 쉬운 것이다.

공부 길을 어떻게 잡으면 넉넉하고 한가한 심경이 될까? 깨치기 전에는 어떻게 공부길을 잡아야 할까? 대종사께서 직접, 성리(?理)의 근원인 일원의 원리를 밝히고 신앙과 수행으로 인생의 떳떳한 길 즉 도 이루는 방법을 밝혀 주신 ‘정전’을 밟아 행하는 것이다. 또한 대종사께서 “나의 법은 신성 있고 공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받아 가도록 전하였다”하셨다. 즉 밖에서 따로이 구하지 말고 정전을 통하여 신성으로 적공할 일이다.

<화정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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