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향 찾아 삶의 전환 계기
옛 이야기 나누며 신앙의 끈 이어

▲ 40을 훌쩍 넘긴 추억의 학생회원들이 학생회가를 힘차게 부르고 있다.
25년전 경주교당 학생회원들이 ‘추억의 학생법회’를 보겠다고 초청하니 불원천리를 마다않고 경주교당으로 달려가는 송흥인 교무님(봉동교당).

경주교당 이수은 교무는 한 단체가 유지 발전하려면 희생 봉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경주교당 학생회 출신으로 원마을 경주교당 사이트를 운영하겠다는 교도가 있어서 크게 기쁘다며 참석한 모두를 환영한다.

21일 오후, 이제 40대 초반이 된 건장한 장년층의 제자들이 한명, 두명 교당에 도착했다.

이번 행사를 계획하고 추진한 장명훈 교도는 남 먼저 교당에 도착, 교무님께 큰 절 올리고 “눈물나려고 해요”한다.

이어 찾아오는 제자들, 학생회 졸업 후 꾸준히 교당에 다니는 제자들은 당당하게 들어와 큰 절을 올리는데 학생회를 끝으로 교당을 찾지 않았던 제자들은 어색하고 쑥스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문 앞에서 망설인다.

‘큰 절 올리면 된다’ ‘들어가라’ ‘같이 가자’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세명씩 들어와 큰 절 올린다.

한결같이 “눈물나려 해요”,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로 인사드린 뒤 오후 4시 모두가 대법당에 들어서자 칠판 가득 써진 ‘마음 고향 찾은 여러분 환영합니다’란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당시 학생회장이었던 박용정 교무(원광제약)의 사회로 학생시절의 식순으로 법회를 본다.

너무 그립고 그리웠던 학생법회를 보기 위해 서울, 문경, 포항, 대구 등지에서 달려온 것이다.

25년만에 해보는 입정, 교가, 일상수행의 요법 등… 가물가물해도 이와 같은 법음이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큰 힘을 주었고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광명이었다.

학생회가를 끝으로 법회를 마치고 빙 둘러앉았다. 그리고 1대부터 15대까지 점검한다. 이번 행사의 주축이 되었고 제일 많이 참석한 12, 13대는 활기가 넘친다. 동기는 물론 선, 후배들과 엮였던 추억담이 밤을 세도 모자랄 판이다.

찹쌀 떡 만들어 팔았던 얘기며 불 때가며 라면 끊여먹었던 일, 선배들한테 맞았던 일, 연화의 밤 행사에 연극·노래 연습으로 매일 매일 교당에 왔던 일, 피아노가 아닌 오르간 반주, 시화전, 체육대회 모든 이야기에 공감하며 한바탕 웃음이 법당을 가득 채운다.

좋았던 기억이 더 많이 남고 선배에게 왜 맞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또한 신나는 얘기꺼리다.

저녁식사시간을 훌쩍 넘긴 7시 30분,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추억담은 이어진다. 교무님의 손을 잡고 놓지 않는 제자, 그 모습을 부러워 질투하는 제자, 이렇게 저녁을 먹고 다음날 산책을 하며 추억의 학생법회는 마쳤다.

송 교무님은 끝까지 제자들 개개인 삶의 터전을 살피신다. 그리고 교당과 연계시키시기 위해 연락처도 물으시고 근처 교당도 찾아주신다.

학창시절 교당을 다녀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도, 나누며 사는 법도 알게 된 것 같다는 제자, 자녀들에게 원불교 다닐 것을 권한다는 제자들을 볼 때 교무님은 흐뭇하고 참석한 모두는 둥그런 일원상을 가슴에 다시 한번 새기는 계기를 갖는다.

당시 경주교당 학생회 출신은 김성근 교무(영산성지사무소), 최현천 교무(새등이문화원), 박용정 교무(원광제약), 원익선 교무(문화교당), 김종길 교무(부산교구), 박유정 교무(배내청소년훈련원, 당시 어린이회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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