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함을 면하고자 할진대 부처를 구함만 같지 못하고 만일 부처를 구하고자 할진대 부처는 곧 마음이니 마음을 어찌 멀리 찾으리오.’ <수심결 1장 중>

탐·진·치의 무명심에서 비롯되는 끊임없는 번뇌의 불길은 물을 끼얹어 끌 수도 없고 그런다고 새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끌 수도 없는 것이다. 이 번뇌의 불길을 일시에 진화시킬 특급 소방수는 누구란 말인가.

보조국사의 대답은 ‘부처를 구하는 것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이다. 윤회의 수레바퀴를 끊고 자유의 세계, 평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은 바로 탐?진?치의 씨앗을 제거하여 이 활활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을 잠재우는 것이며, 그 길을 가르쳐주신 분이 바로 부처라는 것이다.

부처란 과연 무엇일까? 대산종사께서는 부처를 이해하는 정도를 쉽게 단계적으로 설명해주셨다.

사찰에 모셔진 등상불을 부처로 여긴다면 초등학교의 수준이며, 역사적 인물 고타마 싣달타를 부처로 여긴다면 중학교의 수준, 깨달은 사람은 모두 부처라고 여기는 정도는 고등학교 수준, 깨달은 사람뿐 아니라 모두가 부처라고 여긴다면 대학교 수준, 마지막으로 마음이 곧 부처라고 여기는 사람이 최고의 단계인 대학원 수준이라 하셨다.

보조국사 역시 마음이 곧 부처임을 힘써 강조하고 있다. 도대체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가진 사람은 행복의 주인공이 되고 고난에 굴복하고 희망을 품지 못하는 사람은 비극의 주인공이 될 것이며, 작은 집에 살아도 잠잘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작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소유가 아니라 마음임을 잘 알 수 있다. 마음에 욕심을 떼고,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자유자재하고 보면 그것이 곧 여의보주라 하지 않았던가.

<영산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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