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상생 상극의 업력을 벗어나서 죄복을 자유로 한다는 것은?

선업력이나 악업력에 얽매이지 않고 죄복을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니 선악간 인연이나 습관이나 욕심에 끌려가는 힘을 조절하고 부려쓸 줄 알아서 죄에 끌려 수락하지 않고 복에 끌려 넘치지 않으며 일체를 마음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문 :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의 과보는 그 경중이 어떠한가?

선악과 죄복의 내역을 알고는 죄 지으려는 마음이 근본적으로 크게 작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만일 알고도 부득불 짓는 경우가 있다면 조심하는 마음이 앞설 것이요, 지은 뒤에는 바로 참회할 마음이 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선악과 죄복의 내역을 전연 알지 못하고 보면 근본적으로 본능적인 행동이나 욕심에 끌려 자행자지로 작용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참회할 마음도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과보도 모르고 짓는 것이 더 중하게 나타날 것이다.

문 : 사참(事懺)과 이참(理懺)의 관계는?

사참은 밖으로 선업을 계속 수행하는데 그 중점이 있고, 이참은 안으로 탐진치를 제거하는것이다.

그 중점이 있어서 비컨대 끓는 물을 냉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위에다 냉수도 많이 붓고 밑에서 타는 불도 꺼버리는 것 같이 영원히 죄악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밖으로 악업을 쉬고 선업을 계속 수행하는 동시에 안으로 삼독의 뿌리를 녹여 버려야 할 것인바 사참과 이참은 표리의 관계가 있는 것이다.

문 : 천업을 임의로 한다는 것은?

하늘이 짓는 일에 끌려 다니지 않고 그것을 운용하고 활용하여 그 마음에 걸리고 막힘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12인연 육도윤회 성주괴공에 끌려 다니지 않고 그것을 마음대로 운용하여 상생상극으로 변화하는 인과보응의 진리에 얽매이지 않고 그 진리를 알아 대인접물과 심신작용의 생활에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문 : 내외중간에 털끝만한 죄상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내(內)는 육근이요, 외(?)는 육경이며, 중간은 육식이라 할 수 있는바 즉 마음에도 죄성이 없고, 육신의 습성도 죄성이 없으며, 일체인연에도 죄지을 악연이 없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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