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열정을 변치 않을 자 그 누구인가

게송은 대종사 열반 2년 전에 발표되었다. 그때의 정황을 친히 몽당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우고 하더니 마침내 게송을 완성하셨다고 그 때의 정황을 제자들은 전한다.

게송은 대종사가 진리접근의 방식과 내용을 숨김없이 드러낸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어느 교리보다 간명하고 예리하다.

대종사는 그로부터 2년 후 원기 28년(1943)에 발간된 <불교정전>의 교리도 하단 중앙에 게송을 위치시켰다.

게송의 내용은 3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전 회에서 말하였다. 1단계인 ‘유무변환’은 온갖 양태가 존재하는 사바세상의 모습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세상이다.

그러나 2단계 ‘일체개공’에서는 모든 존재가 다 사라진다. 시간도 멈추고 심장도 멈추고 인식도 멈춘다. 공한 것마저 공하여 구공(俱空)이 된다. 이는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님이다.

그러나 제3 ‘일체개진’의 단계에서는 다시 맥박이 살아나고 꽃은 피며 흰 구름 유유히 흐르는 실상이 전개가 된다.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 되는 것이다. 이 구족(具足)의 세계에서는 유도 무도 살아 숨 쉬고, 너도 있고 나도 있다. 다만 일체가 은혜이며 천만 사물이 부처로 화현해 있을 따름이다.

조주선사가 하루는 <신심명>의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그저 취하거나 버리지만 말라(至道無難 唯嫌揀擇)’는 구절을 인용하여 법문을 하였다. 이 말을 듣던 한 학인이 질문한다. “취하거나 버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선사께서도 결국은 <신심명> 한 구절을 취한 게 아닙니까?”

이런 질문에 조주는 “나는 모르겠다.”로 조주다운 딴죽을 건다. 변명을 늘어놓았다면 조주가 아니다. 유무에서 구공, 구공에서 구족으로 가기 위한 길에 대하여 묻는 제자에게 대종사도 시치미를 뗀다. ‘구공이다 구족이다 논할 여지가 어디 있으리오.’

이어서 대종사는 준엄하게 말씀하신다. “이 자리가 곧 성품의 진체이니 사량으로 이 자리를 알아내려고 하지 말고 관조로써 이 자리를 깨쳐 얻으라.”

누구나 30분 동안, 혹은 세 시간 동안 열정을 지닐 수 있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30년 동안 열정을 변치 않는 데에 있다. ‘관조’의 길을 통해야 도달하게 되는 성리의 길에 30년 동안 변치 않고 열정을 지속할 이 그 누구인가.

■ 다음호부터는 계속해서 정현인 교무의 변의품 강의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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