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영산선학대 예비교무 캄보디아 여행기 <5.7~12>

▲ 한 예비교무가 캄보디아 무료병원을 찾은 가족과 이야기 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프랑스 식민통치를 벗어나자마자 같은 민족 간 정권 다툼이 있었고 이어서 베트남의 침공을 받았다.

UN 개입으로 평화협정이 수립되기가 무섭게 10년 전 또 다시 내전이 있었다. 이 가운데 200만 명의 희생자가 생겼고 필드라 불릴 정도로 넓은 지역에 희생자들의 유해가 서글피 울고 있다.

킬링필드는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으로 선명한 숲이었다. 피눈물 나는 역사를 품은 이 곳에서 우리는 이마에 못이 박힌 채 쌓여있는 해골무더기 탑을 앞에 두고 말없이 향을 피우며 조용히 천도법문을 가슴에 새겼다.

백골 탑이 인도를 밟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도(正道)의 등대가 되어 자신이 가지 못한 길을 가도록 인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보았다.

8일 저녁에는 바탐방 교당을 방문했다. 도착 시간은 영산선학대 학생들이 담당한 한글학교 시간.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 발짓과 어눌한 한국어가 오고가는 사이 웃고 즐기며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이어서 시작된 입교식에서 나는 교무님의 교화를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입교식은 철저히 원불교식으로 시작되는 것 같았다. 새로이 도문에 드는 9명의 캄보디아인들이 자리를 하고 하얀 저고리에 검은 치마의 교무님 2분이 진행을 위해 단상에 섰다. 개식을 알리는 죽비가 울리고 나서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배우기 힘들다는 크메르어로 교무님이 진행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법문은 물론 성가도 캄보디아 사람들과 함께 크메르어로 부르고 있었다.

입교식이 끝나고 교무님과 우리 학생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교무님이 처음 왔을 땐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 개 2마리와 함께 타국의 하루를 버티며 생전 들어본 적 없는 크메르어를 조금씩 구사하고, 평균 온도 38도 습도 80∼90%를 오가는 이곳에서 국제 NGO단체들과 함께 병원 구호활동 해 온 삶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 현재는 무료 병원, 컴퓨터 교실,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3년 전부터는 교당도 지어서 교화활동을 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전무출신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다음날에는 무료 병원 진료 모습을 보았다. 병원 시설이 열악한 캄보디아에서 무료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주신 은혜였다. 뜨거운 태양보다 더 밝은 얼굴을 간직하신 교무님들을 보면서 우리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서 바탐방 교당을 나올 수 있었다.

서양준 대학생기자 yellowti@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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