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온 편지 <완>

경계는 곧 쓴 약 같지만
잘만 활용하면 보약도 된다


<김호인 교무·제주국제훈련원>

완연한 초여름이다. 우리집 암탉은 황토방 아궁이 옆에서 가장 행복한 자세로 귀여운 아기 병아리들을 꼭 품고 졸~ 졸~한다. 그 늦은 오후, 일인 몇 역을 연출하며 또순이처럼 살아가는 제주교무님들은 우리 훈련원에서 출가단회를 했다.

그 다음날 교무의 바쁜 일정에 맞추어 교당까지 신속하게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제주는 도로들이 팡팡 잘 뚫렸다. 5.16도로를 비롯하여 1100도로, 평화로, 해변로, 국도, 지방도 등 그 도로들을 중심으로 샛길들이 실같이 여기저기 막힘없어 어디를 가든 시간이 좀 초과 되어 그렇지 크게 헤매질 않는다.

그 날도 난 한라산을 바라보는 오름의 샛길을 향해 위로 위로 달렸다. 말 그대로 구불구불한 샛길을 위로. 어쩌다 한 번씩 달리는 차외엔 너무 한적한지라 맘 푹~ 놓고 달린다.

그 순간이었다. 약 5m앞 거리에서 거침없이 내려오는 봉고차를 발견했다.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찍~”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는 외마디. “어떡해”하면서 두 대의 차가 “쾅”하기 일보직전 양 옆으로 10㎝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멈췄다.

“아! 천만 다행. 아침 기도 덕이야. 사은님! 감사합니다” 자연스럽게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귀로 들으면서 상대방을 바라보니 그 기사도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는 눈치다.

아무튼 서로 살피고 주의하지 못한 책임에 입도 뻥끗 못하고 열린 창문으로 눈을 맞춘다. 만약 성질고약한 사람 같으면 상황은 정반대의 돌풍이 되어 더 험악한 분위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양처럼 선한 눈을 가진 그 청년 기사는 오히려 나보다 더 미안한 표정이다. 나는 고마운 맘과 평순해진 목소리로 “운전 실력 좋네요” 그리고 달리는 승합차 뒤를 향하여 큰 소리로 또 한마디 “좋은 하루되세요” 하고 다시 달렸다.

그리고 평소 즐겨 부르는 ‘신앙송’으로 마음을 위로한다. 바로 그때 나의 심전(心田)에 예쁜 한 송이 꽃이 피어올라 나에게 소근댄다.

‘너 자신에게 고마워 해. 그리고 그 눈을 뜨게 해준 스승님께도 감사해야지’ 하며 아름다운 심화의 향을 피운다. 이어지는 소리. ‘그래 정말 잘했어! 그거야, 김호인 화이팅,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해’

이번 일을 경험하면서 좌산 상사님께서 ‘경계 속에서 득력하라’는 말씀과 ‘경계는 곧 쓴 약 같지만 잘만 활용하면 보약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실 경계인줄도 모르고 어리석게 생을 마칠 가여운 인생 ‘경계’라는 것을 알려주신 스승님 만났으니 이 얼마나 축복 받은 생인가.

스승님께서 ‘눈만 뜨면 경계이니 그 경계에 속지도 속이지도 말며 살라’고 얼마나 신신당부하셨던가.

그래서 신앙인은 그 쓴 약과 같은 경계를 잘 사용하여 보약을 삼아야한다. 아울러 스스로 보약과 선약을 만들 줄 아는 기술까지도 습득하고 산다면 이것을 두고 금상첨화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부처님을 의왕이라 하셨나보다. 앞으로 그 어떤 경계에 넘어지고 쓰러진다 할지라도 오뚝이 같은 신앙인이 되자. 그래서 모든 경계를 임의 자재하는 그 날까지 수행정진에 박차를 가하여 대보은자로서의 삶을 다하자고 다짐하여본다.



제주에서 온 편지는 이번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집필해 주신 김호인 교무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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