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인성사, 죽음과 재생의 제의 구조
■ 원불교 신화와 문화의 폭넓은 시사점 안겨줘


유정엽 교무 ㅣ 원불교사상연구원


법인성사는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과 함께 원불교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일 것이다. 초자연적 신이성을 내세우지 않는 원불교가 유독 혈인(血印)의 이적을 공인하고 있는 것은 법인성사가 가지는 종교적 의미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혜화 교도(법명 경식· 일산교당)는 ‘법인(法認)’의 뜻을 법계의 인증과 함께 ‘소태산의 법’에 대한 인증의 뜻이 담긴 것으로 보며, 법인성사의 개념을 오직 ‘혈인기도’에 국한 하는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방언공사’까지 확장 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방언공사가 밖으로 드러난 가시적 성사(可視的 聖事)라면 혈인기도는 안으로 이루어진 비의적 성사(秘儀的 聖事)이며, 혈인기도가 정신개벽 · 진리불공 · 영(靈)을 위한 것이라면 방언공사는 물질개벽 · 실지불공 · 육(肉)을 위한 것으로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원불교의 정체성이 법인성사에 구현된다고 본 것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법인성사’를 원불교적 신화로서 특히 통과제의의 기본적 구조와 과정의 틀로 분석하고 있다. 통과제의는 출생, 성년, 결혼, 사망 따위와 같이 사람의 일생 동안 새로운 상태로 넘어갈 때 겪어야 할 의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제의의 목적은 해당자의 종교적 사회적 지위를 변경시키는 데 있기에 그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죽음은 다분히 상징적인 것이지만, 이를 통하여 해당자는 자기를 부정하고 속된 존재에서 성스러운 존재로 승화한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굴속에서 고행을 통해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라던가, 심청전에서 인당수에 투신하였다 황후가 되는 과정들이 ‘죽음과 재생’의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의 패턴을 게네프(A.V.GENNEP)는 ‘분리-과도-통합’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본 논문에서도 이 이론을 원용하고 있다.

먼저 제1의 법인성사라 할수 있는 ‘방언공사’가 가지는 신화적 구조를 분석한다. 공사에 들어갔을 때 제자들은 마을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분리’를 경험한다.

이듬해 3월까지 1년간의 공사기간은 ‘과도’로서 범부에서 성자로 변신이 이루어지는 기간이다. 공사가 끝나고 그들은 다시 세계로 돌아와 비범한 자로서 ‘통합’을 성취한다.

공사는 제자들에게는 죽음에 맞먹는 시련이었으며 어려운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은 ‘죽음’을 거쳐 ‘재생’을 얻는 과정과 일치하는 것이다.

또한 제2의 법인성사인 ‘혈인기도’는 ‘죽음과 재생’이라는 제의적 특징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보았다. 사무여한(死無餘?)이라는 최후 증서에 백지장을 찍고 자결의 장소로 출발하는 것은 여타의 신화와 종교에서 빈번히 발견되듯이 ‘분리-과도-통합’이라는 과정에 따라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 끝에 이 교도는 천주교가 성찬(盛饌)을 통해 ‘죽음과 재생’의 제의구조를 반복하고, 불교 역시 석존의 체험을 따라하게 하여 구도적 열정을 고무하고, 원불교 역시 법인기도의 신화적 과정을 득도식과 승급식에 ‘죽음과 재생’의 원리를 응용한다던가, 훈련에서 ‘분리-과도-통합’의 과정을 원용하여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원불교 외부의 관점을 빌려 ‘법인성사’에 대해 바라본 이 논문은 법인성사를 이해하고 원불교학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는 귀중한 논문이다.

동서양의 다양한 신화는 모두 ‘죽음과 재생’이라는 제의구조의 다양한 변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교도의 논문은 원불교의 신화와 문화를 폭넓게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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