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 현화교당 박 현 수 교도

“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에 무릎을 쳤죠”
“혼자사는 외로움에 이골이 났어요”
“내 속에 녹아나야 붓을 듭니다”



“도무지 도시 생활이 편하지가 않아서요. 이렇게 초가삼간에서 사는 것이 딱 내 체질이예요.”

좀처럼 보기 드문 상투머리에 풀이 빳빳한 바지 저고리,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 아무 연고 없는 곳에서 붓을 들고 10년 넘게 혼자 사는 사람이 있다.

전남 무안군 청계면 월선리 예술인 마을에 사는 박현수 교도(본명 인수·60세)이다.

마을에서 맨 꼭대기에 자리 잡은 그의 집은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다. 뒤뜰에는 고추밭이 있고, 앞에는 상추와 쑥갓, 제비꽃, 작약, 라일락, 들풀들이 어우러져 한가로운 시골집 그대로다.

그는 마을에선 서당 훈장님이고, 예술가로 통한다. 시서화(詩書畵)에 능한 그는 오직 이것을 하고 싶어 월선리로 찾아 왔다. 그리고 일주일에 며칠 씩 초·중·고등학교에서 서예와 예절을 가르친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게 좋았다. 무작정 하고 싶었다. 성장해서 가정을 이루고도 그 꿈은 변할 줄 몰랐다. 그래서 아들 딸 결혼 시키고 혼자서 가출을 단행했다.

그리고 산 좋고 물 좋은 이곳에 정착해 텃밭을 일구며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장르 구분없이 그저 맑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자연은 그의 벗이고, 그림의 주제이고, 소재이다.

“보고 느끼고 내 속에 녹아나야 붓을 듭니다.”

연꽃을 그릴라치면 연방죽을 헤집고 돌아다니기 일쑤이고, 물총새 한 마리 보자고 며칠씩 밤을 새며 기다린다. 그야말로 그리고 싶은 그것들이 가슴으로 걸어 들어올때라야 비로소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그렇게 그린 그림에는 훤한 여백 속에서 자연과 삶이 그대로 숨쉬고 있다. 볼수록 여운을 남기고, 깨달음을 생각하게 한다. “스스로에게 감동이 없으면 남도 감동이 없지요.”

그런 그의 철학은 서두르지 않고, 욕심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순리대로 최선을 다하고 하늘에 맡기면 된다는 게 그의 오랜 생각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의 글귀를 보고, 무릎을 딱 쳤던 기억이 있다. 또 영주를 보고는 얼른 베껴놓고 늘 외웠던 기억도 있다. 그런 인연이 이어져 작년에 현화교당에서 입교하고 교도가 됐다.

“대종사님 말씀에 푹 빠져삽니다. 아침 저녁으로 심고를 올리고, 교전 읽으며 마음 다스리면 거기에 재미가 있고 행복이 있죠.”

요즘 그가 구상하고 있는 그림의 소재는 성리품 11장 ‘변산구곡로 석립청수성'. 매일매일 화두거리다. 며칠 전에는 밤에 자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자다 말고 스케치를 해놓았다. 올 10월에 열리는 원불교 미술인전에 출품할 계획이란다.

“전라도 말로 고독에 이골이 났지요. 혼자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면 팔자려니 합니다. 그냥 좋아요. 이렇게.”

겨울 눈보라가 문풍지를 휘감고 들어와 그의 얼굴로 떨어질 때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이 사람.

고집스럽게 자신의 세계를 가꿔오면서도 막걸리 한 사발에 금방 유행가 가락을 읖을 줄 아는 끼가 넘치는 이 사람.

걸릴 것 없는 자연스런 삶.

이 사람이 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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