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이 없다는 것은 일체의 상이 텅 비었다는 뜻

미혹된 마음이 근본이 없는 자리를 비추어 보면 허공 꽃과 같은 삼계가 바람에 연기 같이 걷어지고 육진 번뇌가 끓는 물에 얼음 녹듯 하리라. <수심결 24장 중>

요즘 유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에 대한 논란이 세인들의 관심이다. 학력 위조에 대한 사회적 요인이나 윤리적 판단은 차치하고라도 어느 유명 인사의 학력 위조 사실이 밝혀지자 평소 그에 대하여 호감을 갖고 있다가 매우 실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에 대하여 이런 저런 내막을 알고는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우리 주변의 어느 사람에 대해서도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는 내가 아는 만큼 그 사람을 파악하고 이해할 뿐이다.

어디 사람만 그럴까. 모든 인류가 하나의 세계에서 같이 살고 있지만 65억 인구의 가슴 속에는 제각각 서로 다른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만법은 곧 내 마음이 나타난 바이며, 세계는 곧 나의 분별식심일 뿐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수행에 있어서는 이와 같이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나의 생각이 사실상 매우 임의적이고 주관적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가진 생각이 절대적인 사실이거나 원칙이 아니라는 것, 본래 근본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할 때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왔던 세계는 마치 허공 꽃과 같아서 바람에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는 그대로의 실상이 드러날 것이다.

근본이 없다는 것은 일체의 상이 텅 비었다는 뜻이며, 미혹됨이란 이 세계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착각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가장 큰 미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곧 실상’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가, 나의 상식이, 나의 지식이, 나의 분별식심이 그렇게 볼 뿐인 것을.

장석준 교무 / 영산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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