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자연히 담박해진다

장석준 교무 / 영산선학대 교수

만일 능히 이와 같이 생각 생각을 닦고 익혀서 본래 면목을 비추어 봄을 잊지 아니하여 정(定)과 혜(慧)를 평등하게 가지면 곧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자연히 담박해지고... <수심결 25장 중>

경계를 당하여 어떠한 마음 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호감을 갖게 되고, 미운 사람을 보고 싫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곧 마음 작용의 기본 원리이며 또한 진리의 작용이기도 하다. 마치 책상을 두드릴 때나 깡통을 두드렸을 때 각각의 소리가 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런 일인 것이다. 내가 가진 분별 식심에 따라 정확히 반응하는 진리의 작용이다.

그러나 종종 공부인들은 이를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이다.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내가 왜 이런 마음을 낼까?’ 하는 생각에 애써 외면하거나 대부분은 그 원인을 밖으로 돌려 그 책임을 바깥 경계에 돌림으로써 자신을 방어하고자 한다. 예의 없이 구는 후배가 있다 하자. 이때 ‘예의를 모르는 친구로군! 하지만 내가 너그럽게 이해해줘야지.’ 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수행자로서는 자신의 마음 작용을 정확히 보지 못하고 외면하는 것이 된다. 이럴 때 ‘본래 요란함도 어리석음도 그름도 없는 내 마음이 예의 없는 후배를 보고 불편해하는구나.’ 하고 나의 일어나는 마음을 이해하며,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곧 ‘살도음망(殺盜添?)이 성품으로 좇아 일어남을 자세히 관하는 공부’이며, 본래 면목을 비추어 보는 공부이다. 이렇게 비추어 볼 때 나도 모르게 그 요란한 마음은 잠잠해지고 고요해지며,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자연히 담박해진다. 마음이 고요해짐에 따라 자연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지니, 이렇게 되면 곧 정과 혜를 평등하게 가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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