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중을 논할 수 없음이 핵심이다

정현인 교무·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우리 회상 첫 신앙의 대상은 천지신명이었다. 천지신명은 ‘하느님’과 더불어 오랫동안 흘러온 우리 민족의 공통적 신앙의 명칭이었다. 우리 민중은 이 천지신명에대하여 생명의 출산에 감사하고 생활의 풍요를 기원하고 사후의 평안을 빌었다.

소태산의 구도 중 우연히 떠오르는 주송도, 기원을 올릴 때의 대상도 천지신명이었다. 대각 후 제자들을 모으는 방편으로 천지신명에게 치성을 올리었고, <성계명시독>을 통하여 마음가짐을 점검하게 한 것도 천지신명이 그 대상이었다.

후에 ‘허공법계’ ‘천지허공’ 따위의 대체용어가 출현하기도 하였으나 이 회상 신앙의 정서는 그 기본이 변치 않았다. 후일 사은사상이 정립된 후에도 ‘허공법계’라는 신앙적 용어가 병용되고 있다.

우리 회상에 사은사상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원기 14년(1929) <월말통신>의 법문에서이다.

소태산은 <정전> ‘심고와 기도’에서 ‘천지하감지위 부모하감지위 동포응감지위 법률응감지위’라 말하고, 변의품 23장에서는 천지와 부모는 부모항렬이라면 동포와 법률은 형제항렬이므로 하감과 응감으로 나누었다고 말하고 있다.

항렬은 세대의 구분 단위로써 우리의 조상들은 이 항렬에 따라 형제끼리 공통되는 이름자를 지니기도 하였다. ‘감’이란 ‘응함’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따라서 하감이란 종적으로 응한다는 의미라면 응감은 횡적으로 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처럼 일원의 진리를 사은으로 나누고, 사은을 다시 두 개의 범주로 구분하여 하감과 응감으로 대응케 한 것이다.

그러나 주관도 공하고 객관도 공하고, 행하는 행위마저 공한 것이 존재의 기본 공식이라면, 일원을 네 가지 은혜로 분류하고, 이를 다시 두 가지로 묶어 차등 짓는 따위의 작업은 구차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는 어리고 어리석은 중생들을 위하여 강연히 구분하신 대종사의 단안이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경중을 논할 수는 없으나’라는 말이 법문의 핵심이 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사실 법신불은 고유명사라기보다 보통명사에 가깝다. 법신불의 내역을 사은으로 류별하고, 때에 따라 ‘하감’ ‘응감’을 아울러 응용은 하더라도, 차제에 총체적 호칭을 좀 더 친근하고 익숙한 우리의 언어로 정리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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