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하고 계승하면 보은자

정현인 교무 /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변의품>은 의문에 답변하는 형식의 법문이다. ‘천지 보은조항에 그 도를 체 받아 실행하는 것이 보은이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한 제자가 여쭈었다.

그러자 대종사는 예를 들어 말씀하신다.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물질의 보수는 없다할지라도 선생의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행하여 사업을 계승하면 보은자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I정전 J I사은 J장을 보면 모든 조항이 피은과 보은의 항목으로 나뉘고 각 항은 다시 강령과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령은 대체적인 원리를, 조목에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얼핏 보면 대종사께서 일원을 평등하게 사은으로 나누고 있는 것 같으나 사은은 실은 등가적(等價的) 분류가 아니다.

그 내용은 보은의 강령에 그 특색이 나타난다.

보은의 강령을 요약해 보면 천지보은은 ‘천지의 도를 체 받아 실행함’, 부모은은 ‘무자력자 보호를 줌’, 동포은은 ‘ 동포 간에 자리이타를 함’ 법률은은 ‘법률의 정신에 순응함’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천지은은 천지8도라는 형이상학적 무위의 원리를 체 받는 것에서 출발함이 보은의 강령이라면, 천지은을 제외한 세 가지 은은 현상적인 유위의 세계를 이루어 가는 것에서 출발함이 강령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천지은은 나머지 세 가지 은혜와 등가적 균형관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층적이며 총체적인 은혜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지은은 보은의 대상에 있어서도 다른 세 가지 은과 대비되는 성격을 지닌다.

세 가지 은은 보은의 대상이 대체로 피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천지은은 천지의 도를 체 받아 인간 세상에 실현하는 데에 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한 마디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천 냥’이라는 재화가 ‘한 마디 말’이라는 인정의 표현으로 상쇄될 수도 있는 것이 존재의 원리이다.

이 세상은 수 많은 차원들로 교차되어 있으므로 피은과 보은은 우리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만이 아닌 훨씬 스마트한 방식으로도 교류가 가능함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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