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으면 높은대로
낮으면 낮은대로

물이 산을 끼고 돌매 굽은 곳을 만나면 굽은 대로 가고 곧은 곳을 만나면 곧은 대로 가는 것과 같아서 마음 마음이 분별이 없나니 <수심결 28장 중>

보조국사는 원래 번뇌가 없는 우리의 성품을 깨달아 그 성품을 바탕으로 정과 혜를 아울러 닦아나가는 돈오점수의 수행이 곧 모든 성현들이 밟아온 수행길임을 단언한 바 있으며, 이러한 정혜쌍수의 수행은 바로 우리 마음의 공적영지의 본체와 작용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일 뿐임을 또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점차적인 수행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성품을 깨닫고 보면 심성이 원래 청정하고 일체 번뇌가 본래 공(空)한 것이기 때문에 공부에 특별한 공력을 쓰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보조국사의 표현을 빌자면 ‘원래에 스스로 함이 없어서(元自無爲) 다시 특별한 처소와 시절이 없을 새 빛을 볼 때와 소리를 들을 때에도 다만 이러하며, 옷 입고 밥 먹을 때에도 다만 이러하며, 대소변 볼 때에도 다만 이러하며 행주좌와 간에 기뻐하고 슬플 때에도 언제나 그러할 뿐’ 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어떠한 일을 하거나 마음이 온전하고 편안하여 요란하지도 어리석지도 그르지도 않아서 항상 여여하여 한결같은 마음을 지켜갈 뿐이다.

그 마음은 마치 빈 배를 물결에 묶어놓았을 때 물결이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아무 거리낌이 없는 것과도 같고, 물이 산을 끼고 돌아갈 때 굽은 곳을 만나면 굽은 대로 가고 곧은 곳을 만나면 곧은 대로 가는 것과 같아서 마음 마음에 분별이 없어서 항상 자성의 정과 혜를 떠나지 아니하여 인연을 따라 응하되 막히고 걸림이 없으며 선을 닦되 닦는다는 상이 없고, 악을 끊되 끊는다는 상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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