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탐방 대구경북교구 동명훈련원

▲ 동명훈련원 전경
▲ 훈련원 내부, 왼쪽부터 보안장보살 반야전(법당), 무량수전(생활관), 화엄루
자체선방 개설로 훈련원 맥 이으며 변화 모색
40년 된 건물 노후와 부대시설 미흡으로 어려움
복지시설 등 용도변경, 지역교화 돕자는 의견도




경부고속도로를 타고가다 대구-포항간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도동분기점 근처에서 팔공산 쪽을 바라보면 가까운 산자락에 아주 특별하게 생긴 건물을 볼 수 있다.

얼핏 외국의 성을 닮았을까, 아니면 동남아 사원이 떠오를까, 아무튼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곳이다. 그곳이 바로 대구경북교구 훈련원인 ‘동명훈련원’이다.

시내에서 팔공산 가는 대로변에서 마을로 접어들면 얼마 안 가 고즈넉한 분위기의 동명훈련원이 나온다. 잘 알려진 대로 7개국의 건축양식을 본 따 지었다는 건물들이 마냥 신기하게만 보인다.

대로변에서도 보이는 7층탑과 2층 누각은 일본식인 천수천안탑과 화엄루다. 입구는 인도풍이며 그 옆의 각황문은 대만 용문사 일주문이 모델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보안장보살이 자비로운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미얀마식 반야전(법당), 한국양식인 무량수전(생활관)이 앉아있다. 반야전 뒤에는 태국과 스리랑카 양식으로 지어진 태왕전과 보궁전, 법륜탑 등이 아기자기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동명훈련원은 원래 ‘동명사’로 부처님을 모시는 사원이었다. 특별한 불심으로 이름 높던 재가불자 고(故) 여동명 선생이 동남아 7개국 순방 후, 부모의 은덕과 서가모니불의 위덕을 기리고자 1968년부터 5년 동안 심혈을 다해 지은 곳이다.

1974년 여동명 선생 열반 후 당시 대산종법사의 법문에 감화해 입교한 장자 여원광·임원각행 부부가 교단에 희사함으로써 원기66년(1981) 봉불식을 올리고 새 시대 새 불법인 원불교 훈련원으로서 행보를 시작했다.

올해 부임한 훈련원장 정귀원 교무는 이 같은 훈련원의 맥을 잇기 위해 4월부터 자체 선방을 개설했다. 선과 관련된 각종 원경을 보기 위해 중문학과 한문학을 전공할 정도로 열의를 가진 정 교무는 훈련원에서 교도들을 대상으로 6개월간 선방을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프로그램은 좌선법에 기초한 선과 요가, 그리고 선서 강독 등이었다.

정 교무는 “단계별 훈련은 상식적인 수준으로 체험증득이 어려운 만큼 초기교서와 연원경에 뿌리해 훈련을 심화시킬 필요가 있고, 종교 본연의 가르침들을 증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훈련 활성화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동명훈련원은 지은 지 40년이 가까울 정도로 노후 된 까닭에 도량수호에 대한 대책에 점차 절실해지고 있다. 또한 훈련생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부대시설 미흡, 운영인력 부족, 자체 유지방안 부재 등의 난제 등은 20년 전부터 제기되고 있는 사안들이다.

원기74년에는 범교구적으로 힘을 모아 동명훈련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대법당 신축 등 5개년 개발계획을 추진하는가 하면, 원기86년에는 교당 기능을 겸하기 위해 ‘봉무선교소’인가도 신청했다. 당시 인근 봉무동과 불로동 주민을 중심으로 매월 3회씩 법회를 열었다. 한편에서는 시대에 맞도록 복지시설 등으로 용도를 변경해 지역교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원기86년 개원한 성주 삼동연수원이 훈련원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도 영향이 크다.

교정원은 전국의 각 훈련원들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삼동원, 만덕산훈련원과 같이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교도들의 훈련도 다양화 하고 훈련원도 자체적으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이는 사회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형태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에 동명훈련원도 이제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할 기로에 서게 되었다. 훈련원으로서 기능을 살리고 강화해 대구경북지역에서 교단을 대표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 할 것인지, 복지 및 기타시설로 저변교화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할 것인지 대구경북교구의 현명한 판단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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