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 못하면 항마에 오를 수 없다

정현인 교무ㅣ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삼산 김기천 선진이 여쭈었다. “견성을 하지 못한 사람이 정식 법강항마위에 승급할 수 있습니까?” 이에 대종사는 잘라 말씀하셨다. “승급할 수 없다”

<대종경>에 전개되는 수많은 종류의 시나리오에서 삼산은 언제나 중요한 시점에 등장한다.

견성 혹은 성리, 일원상 따위의 핵심적이고 난해한 고비에 적절한 물음을 가지고 등장하여 시원한 청량수를 얻고 사라지곤 한다.

원기13년 어느 날 대종사께서 그가 성리 설하는 것을 듣고 말씀하시었다. “내가 비몽사몽간에 여의주를 삼산에게 주었더니 받아먹고 환골탈태하는 것을 보았는데, 실지로 삼산의 성리 설하는 것을 들으니 정신이 상쾌하다(성리 22장)”

이 회상 최초의 견성인가가 있은 지 3년 후에 실시한 법위사정에서 삼산은 예비 법마상전급에 오른다.

여기에서 우리는 견성이 정식 특신급의 공부인으로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전공필수과목임을 알게 된다. 따라서 견성을 못하고서 법강항마위에 오를 수 없다는 대종사님의 단언은 당연한 것이다.

사실은 여기에서 견성을 어떻게 규정해야할지, 또는 이와 관련하여 법강항마위의 법위를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등의 문제가 있다.

정산종사의 견성 5단계 법문(원리 9)은 모든 법위를 견성과 관련하여 설명한 감이 없지 않으므로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정전> 법강항마위 조항과 연결 짓는다면 견성은 성품의 대소의 속성을 분명히 파악하여 그 이치에 걸림이 없는 상태, 또는 성품의 불생불멸한 측면을 분명히 알아서 생로병사에 해탈을 얻은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견성에 대한 정의를 어떤 방면으로 접근하든 성품이 내 안에 있음을 분명히 아는 것은 견성의 첫 발을 디딘 것이며, 모든 업의 출발이 되는 에고가 확실히 사라지는 체험을 한 것은 견성의 마지막 스텝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에고가 분명히 사라지는 체험이 없고서야 생로병사의 해탈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

과문한 탓인지 삼산 이후로 우리 회상에서는 견성인가 받았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물론 견성을 인가받지 못한 것과 견성을 하지 못한 것은 구분해야 옳겠으나, 슬픈 점은 성리문답과 견성인가를 솜씨 있게 다루어갈 스승이 현재 우리 곁에 적다는 사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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