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비워야겠다고 생각해도 안돼
생각을 놓아버려!

견성, 밥먹기보다 쉬워!
법대로만 해라


“승산님, 일원상이 무엇입니까?”

만덕산에 도착했을 때 승산종사는 식당 안 난로가에 앉아 있었다. 창밖에는 눈이 내렸다. 종사는 대답에 앞서 “이것부터 먹어 봐” 하고 군고구마를 꺼내 주었다. 군고구마와 함께 나온 감잎차는 종사가 직접 만든 것이다.

“일원상이란 이것이여.”

종사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원불교에서는 이걸 믿어. 알지?” 또 다시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것이 신앙의 대상이고 수행의 표본이여.”

<원불교전서>의 ‘교의편’은 일원(一圓)이란 ‘우주만유의 본연이며,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이라 말하고 있다. 종사의 일원상 법문은 유명하다. 만덕산에서 이루어지는 하선과 동선 훈련에서의 주제는 늘 일원상이다. 세수 84세. 법랍 62세. 목소리가 바위팍을 두드리는 샘물소리처럼 카랑카랑하고 맑다. 자비로운 미소. 펄럭이는 옷깃에서도 신선한 선기(禪氣)가 느껴진다. 정신이 밝아진다. 종사는 오로지 일원상을 화두로 삼고 일원상을 의지해 살아온 어른이다.

“일원이란 마음을 말하는 것이여. 본성하고 마음하고는 달라. 그래서 부처님의 마음은 그냥 마음이라 한 것이고, 중생의 마음을 본마음이라고 한 거여. 본성은 본마음이라는 뜻이거든. 행여 마음이라고 쓰면 부처님 마음과 같은 것으로 여길까봐 중생의 본마음이라고 구분했어.”

종사는 또 동그라미를 그려보였다. “여기 오신 김에 이것이 무엇인가 확실히 깨닫고 가세요. 깨닫는 것은 순간에 있어요. 그래서 돈오(頓?)라고 하잖아? 몰록 깨닫는다는 말이여. 대종사는 깨닫는 것을 밥 먹기보다 쉽고 코풀기보다 쉽다고 말씀하셨어. 일원상의 진리를 깨닫는 것은 공부의 시작이예요.”

종사는 일원상을 깨닫는 것이 견성(見?)하는 것이라고 했다. 견성을 가리켜 성품을 ‘보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렇다면 견성이 ‘보는 것’의 종점이 아니란 말인가? 종사에게 ‘깨닫는’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물었다.

“삼학을 공부라고 해. 삼학이 뭐여? 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의 세 가지를 삼학이라고 하잖아?”

또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것 깨닫자는 것이고, 이것 양성하자는 것이고, 이것 취해 쓰자는 것이 삼학이여. 이것을 알려거든 이것 갖고 공부하면 돼.”

종사는 허공에 동그라미를 수없이 그려 나갔다. “이것만 깨달으면 돼, 이것만 양성하면 돼, 이것만 취하면 돼.”

종사는 “죽어서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은 아무 것도 없지만, 공부해서 얻은 맑은 기운은 가져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교단에서 교화가 잘 안 되는 이유도 출가자나 재가자가 공부를 제대로 안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다들 열심히 공부를 하고는 있죠. 그런데 법대로 안한다는 거여. 법대로 안하니까 공부가 더 힘들 것 아닌가? 대종사님은 ‘과거 상근기 100년 걸렸던 공부를 내 법대로 하면 1~2년 안에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 법대로 하는 것이 뭐여? 무시선을 법대로 행하는 것이 공부여. 일원상을 법대로 수행하는 것이 공부여. 일원상 서원을 법대로 세우는 것이 공부여.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을 법대로 하는 것이 공부여. 법대로만 하면 다 견성하게 되어 있어.”

창밖에 내리는 눈이 거세어졌다. 눈이 많이 내린 탓에 만덕산 성지를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만덕산은 원불교 초선지(初禪地)다. 승산종사는 이 성지에서 일생동안 영육쌍전(靈肉雙全)의 수행을 했다. 종사는 출가 이후 1년을 총부에서 서기보는 일을 한 것 빼고는 줄곧 농원에서 살았다. 4년을 산업부에서 농사짓는 일을 했고 수계농원에서 18년을 일했다. 그리고 만덕산으로 와서 오늘날의 만덕산 농원을 일구어 놓은 것이다.

종사에게 물었다. “승산님. 일할 때나 공부할 때나 늘 일원상을 생각하면 됩니까?”

종사는 손으로 저었다. “생각이 아니여. 마음을 비워야겠다고 생각해도 안 돼. 생각을 놓아 버려. 다만 볼 적에는 무엇이 보는가, 들을 적에는 무엇이 듣는가, 가는 데에는 무엇이 가는가, 설거지 할 때는 무엇이 설거지를 하는가를 확인하는 거여.”

종사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후박나무로 만든 것으로 등 두드리는 기구다. 종사가 직접 나무를 베어서 낫으로 깎아 만들었다. 종사는 이것을 ‘여래봉’이라고 불렀다. 더 정확히 말해 ‘여래축하봉’이라고 했다. 10년 내로 성불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사람에게 종사가 선물을 준다.

여태까지 560명에게 선물했다. 아직 440개의 여래봉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종사는 10년 안에 1000명의 여래가 출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불을 한다면 얼마나 장한 일이여? 그래서 여래축하봉이라고 이름을 붙였어. 성불할테여? 안 할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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