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훈교무의 정전강의9 - 부모은

‘정산종사님은 ‘모든 보은 가운데 부모 보은이 제일 초보가 된다’고 하시고,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다른 은혜도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가장 가까운 부모의 은혜를 발견하는 것이 천지, 동포, 법률의 근본적인 은혜를 바로 알아가는 기본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말씀이다.

위대한 성현들은 한결같이 부모님의 크신 은혜에 보답하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몸이 닳고 닳아 뼈가 부스러지고 골수가 나올 때까지 그 은혜를 갚고자 해도 갚을 수가 없는 것이 부모님의 은혜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이 몸을 낳아주신 은혜, 길러주신 은혜를 생각해보면 한 없이 높고 큰 은혜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부모의 은혜를 알아 갚아나가는 것이 거룩한 신앙행위가 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처럼 가장 가깝게 발견하여 알 수 있는 부모님의 은혜가 늘 가슴속에 살아있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큰 소리를 치는 부모,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부모, 말도 안 되는 일을 강요하는 부모, 때로는 욕설을 서슴지 않는 부모, 낳았으되 버리는 부모 등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부모는 은혜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은혜를 입었다는 생각보다 끝없는 원망을 풀어내고 싶은 부모도 있고,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도록 힘들게 하는 부모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 없이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고민하고 원망할 수 있는 자신을 만들어준 분이 바로 부모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존재’,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태어나지도 못했으며, 세상과 마주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비록 두려움과 고통을 안고 마주한 세상이지만 삶이 주는 가르침과 놀라움은 부모님을 통해서 보여주는 법신불 일원상의 무한한 위력이자 축복이다.

크게 당황하거나 위급한 경우를 당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다. ‘엄마야!’ 또는 ‘아버지!’라는 말이다. 모든 상황, 모든 장소, 모든 순간에 가장 조건 없이 응해 주고 있다는 근원적인 믿음이 부모와 자식사이에 있는 것이다. 가장 힘들 때 조용히 ‘어머니, 아버지’를 부르면 편안해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부모님과 나 사이, 그 어떤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강연히 부모은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어린 아이가 자기 생각을 열심이 옹알거리고 있을 때 아무도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해도 부모는 아이의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한다. 마치 마음으로 올리는 기도의 소리에 법신불의 화답이 이루어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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