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호준 교도·장충교당
산하대지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만물이 약동하면서 새로운 꿈과 희망을 피워내고 있다. 우리 사회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 살리기와 선진국 진입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의 양적 성장만 가지고 선진국을 이룰 수 있는가. 문화와 복지, 국민 삶의 질이 고르게 나아져야 한다.

스포츠와 문화, 과학 기술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동호인과 매니아 그룹이 폭 넓고 두텁게 활성화되는 것이 선진국의 특징이다. 1인당 소득 2만 달러 이상의 선진국에서 급속히 확산된다는 마라톤만 해도 그렇다. 국내의 마라톤 대회 수가 지난 10년에 수십 배 늘어 연간 400회 내외의, 평균 매일 1회 이상의 크고 작은 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몇 해 전 지인의 권유로 필자도 마라톤에 입문하였다. 연습이 부족하여 그저 제한 시간 내에 풀코스를 완주하는 정도로 달리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한강 변을 달리며 가끔 ‘선정’에 젖어들기도 하는 걸 보면 심신조복(調伏)의 일환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연중무휴로 훈련하는 동호인 모임에는 많은 이들이 매주 세 번의 훈련에 빠지지 않는다. 임원들은 경제적 보상이나 명예도 없이 묵묵히 일하는 성직자와 흡사하다.

이 모임의 흡인력이 무엇인가. 모이면 스트레칭 체조를 하고 짧으면 10km, 길면 30km 정도 달린다. 그리고 보강운동을 하고, 체조를 하고 헤어진다. 군더더기가 없다.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기도 하지만 큰 관심도 없고 중요한 일도 아니다. 달리는 경험과 지식, 실력이 목소리를 내는 지자본위로 운영된다.

요즘 교화대불공이 교단의 화두다. 전법 교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원티스에 들어가면 법회출석이 미흡하고 교화목표에 뒤쳐진 교당의 명패 앞에 빨간 불이 켜져 있다고 한다. 교화실적을 인사에 반영한다고도 한다. 그러다 보니 법회의 설교에서도 연원 의무를 강조하고 교화운동 구호를 외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여러 교당에서 들린다. 첫 방문자나 신입교도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이야기이다. 자칫 욕속부달(欲速不達), 본말전도(本末顚倒)가 될까 걱정이다. 교당의 교화나 살림살이는 교화협의회에서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산종사께서는 “공부위주 교화종”이라고 하셨다. 갈수록 세상은 바빠지고 손짓하는 놀거리도 많아지는데 교도들이 매 주 법회에 참예하는 뜻은 영혼의 안식과 공부의 진급에 있다. 교화구조의 개편과 교화지원의 강화가 시도되는 가운데 출가, 재가가 합심하여 법열 넘치는 법회를 이루어야 한다. 비단 법회뿐인가.

모든 모임은 마치 마라톤 클럽에 모이면 바로 옷 갈아입고 몸 풀고 달리듯이 좌선이든, 독경이든, 설법이든, 그 모든 것이든 그를 통해 진경에 들어가야 한다. 언어도단의 입정처에 곧바로 다가서야 한다. 그럴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실천되고 그 공덕이 공유되어야 한다. 연후에 자연히 교화가 효험을 내고 사업도 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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