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

박혜훈 교무의 정전강의 12

‘화분을 사려면 어디로 가야할까?’ 혼잣말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화원이 모인 상가를 떠올리게 된다. ‘점심은 어디에서 먹을까?’ 역시 생각하다보면 음식점이 모여 있는 곳을 생각하게 된다.

홀로 가게를 열고 물건을 팔게 되면 장사가 잘 될 것 같은데 실상 그렇지가 않고 오히려 여럿이 모여 경쟁을 하면서 장사를 하는 것이 훨씬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장사뿐만이 아니라 사람살이가 대부분 그러하다.

홀로 사는 것보다 함께 어울려 사는 것에서 더 많은 웃음과 보람이 묻어나는 것이다. 사람살이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솟아오르지만 도로가에 홀로 심어진 나무는 생기를 잃은 듯 보인다.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 모두를 살리는 평범한 진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원은 우주 만유의 본원이며, 제불 제성의 심인이며, 일체 중생의 본성’이다. 본원·심인·본성의 의미는 무엇인가? 근본이 본래 하나라는 것이다. 곧 일원상의 진리가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세계는 모두가 본질적으로 하나가 되는 세계, 하나의 세계이다. 우리가 구현해갈 수 있는 하나의 세계는 어떠한 세계인가?

더불어 사는 세계, 조화롭게 사는 세계,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세계, 소박하게는 내 이웃을 내 가족과 같이 여기며 내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는 은혜가 충만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사요는 더불어 사는 방법, 우리 모두가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제시된 네 가지 중요덕목이다.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자력양성, 배움의 노력을 쉬지 않아 함께 진보하는 지자본위, 내 자녀에 국한하지 않고 모두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함께 발전해가고자 하는 타자녀 교육, 공익에 앞장서 헌신한 사람을 숭배하며 모두가 공익을 위한 공도정신을 실천해가고자 하는 공도자 숭배, 이 네 가지 항목을 함께 실천한다면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요는 신앙의 행위가 개인의 복락을 구하는데 그쳐서는 안 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작은 실천과 노력을 해가는 것이 참다운 신앙행위임을 제시해준다. 개인의 안위를 위해 불공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함께 하는 우리를 위하여 사회를 향한 불공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대산종사께서는 사요를 통해 인권평등, 교육평등, 지식평등, 생활평등을 이루게 됨을 강조하셨다. 타고난 모습 그대로 그 가치를 제대로 발현하는 사회, 함께 함으로 인하여 더 행복한 사회, 제 각기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하여 울창한 숲을 이루는 하나의 세계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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