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메시지11 - 이산 박정훈 종사

▲ 홍현두 교무
스승님 지도 따라 말없는 정진
자기 방법대로 후학 교육은 금물


봄비가 촉촉이 내린 일요일, 남자원로수양원에서 노후 수도에 여념이 없는 이산 박정훈 종사(75)를 찾았다.

‘네 덕 내 탓’, ‘웃음’이라는 필묵으로 널리 알려진 종사답게 방안 가득 맑은 묵향이 배인 듯 하다. 작은 책상 위 한편에 놓인 둥근 붓걸이에는 크고 작은 붓들이 가지런히 걸려있다. 다른 책상에는 언제라도 글씨를 쓸 수 있도록 문진이며 화선지를 두었다. 흐린 날씨 탓에 방이 제법 어두웠지만 불은 켜지 않는다. 생활이 된 근검절약 때문이리라.

인터뷰 운을 떼며 “공부하던 중 어려움이 없으셨냐”는 질문에 이산종사는 “어른들 모시고 지도해주신 대로 살아왔기에 고비라는 생각 없이 평탄하게 살아왔다”고 답했다. 내심 숨겨진 공부담을 듣고 싶던 차 말문이 막힌 당황함을 눈치 챘는지 빙긋이 웃음 지으며 스승님 모시고 공부한 이야기 한 자락을 풀어주었다.

출가 인연인 훈타원 양도신 종사가 이산종사를 전무출신 시키면서 ‘날마다 의심 1건 씩 낼 것’과 당시 ‘정산종법사께 문안드릴 것’을 주문하셨다고 한다.

공부를 해본 사람이면 매일 의심 1건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을 안다. 그래도 이산종사는 그 가르침을 철석같이 지켰다.

“하루는 잘 시간이 지났는데 불을 안 끄는 것을 보시고 훈타원종사께서 연유를 물으셨어요. 의심 건을 못 잡아서 연구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웃으시며 ‘오늘은 그만 자라’고 하신 일이 있었지요.”

이산종사는 출가 후 조실 청소를 하며 자연스럽게 정산종사께 문안을 올리게 되었다. 매일 챙기는 의심건에 대해 질문할 기회도 자주 있었다.

“철없는 질문도 했을 텐데 늘 자상하게 답해주셨어요. 정산종사 법어모음 《한울안 한이치》에 이름 없이 나온 질문은 거의 내가 한 거예요.”

이산종사의 정성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20대 초반 당시 교정원장인 대산종사가 “자기 전에 법위등급을 암송하고 수행과 대조하라”한 가르침을 받아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해왔다고 한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50여 년이다. 구정선사의 9번 솥걸기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산종사는 “하루는 법위등급을 외다가 깜빡 졸았는데 깨고 나니 조금도 더하거나 덜함 없이 그 뒤부터 다시 외워지더라”며 “여기에 묘한 의심이 생겨 궁글리고 궁글리다가 보니 영생문제와 죄복인과가 해결 되었다”고 말했다. 공부가 특별한 데 있지 않고 평범한 가운데 깊어진다는 산 증인인 셈이다.

보는 이마다 편안히 여기며 작은 욕심을 갖게 하는 종사의 필묵은 아직도 전 세계 교당에서 요청이 들어온다.

8세 때부터 써왔으니 글 쓴지도 70년이 다 되었다. 소질이 있었는지 어렸을 때부터 글씨를 잘 써 교실 환경정리를 도맡아 했다. 한참 쓸 때는 자다가도 손이 움직일 정도였다고 한다.

“글씨를 쓰다보면 일심공부가 절로 돼요. 글을 읽을 때는 사심잡념이 낄 수 있지만 글씨를 쓸 때는 그럴 수가 없어요. 거의 다 써놓고서 마지막 획이 틀려버리면 안되니까.”

어느 날 어른들의 칭찬에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강암 송성용, 일중 김충현 선생 등 시대를 풍미한 서예가에게 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도를 받은 것이 또 수년간. 강암 선생의 경우 열반에 들기 며칠 전까지 지도를 받으러 다녔다. 한 번 잡으면 정성이 쉬지 않는 이산종사.

“글씨를 오래 쓰다보면 잘 쓴 것은 입체적으로 보여요. 더 오래 쓴 것은 활동적인 인상을 주고. 그림, 말도 마찬가지예요. 말을 그냥 하면 공간에 소리만 날리는데 많이 하면 입체적이 되고 더 잘하면 활동적이 돼요. 그러면 너와 내가 같이 움직이고. 내가 호소해서 나와 같이 움직여져야 진솔한 말이지요.”

이산종사의 설법뿐 아니라 독경에도 사람을 이끄는 힘이 담긴 것이 이런 연유일까. 테이프로도 나온 이산종사의 독경은 아직도 많은 재가출가 교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소리와 얽힌 이야기 하나. 어느 날 시조소리를 들으며 해보면 좋겠다 싶었던 이산종사는 국악 관련 테이프를 구해 출장을 다니며 여러 시간 씩 듣고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지 다시 3년, 전북교구장 시절 종사의 시조소리를 들은 국악과 교수가 “1천 시간은 해야 나는 소리”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후진들이 표준삼을 법문을 부탁하자 이산종사는 “붓글씨 공부하는데 체본을 많이 주는 선생은 좋은 선생이 아니다”며 “훌륭한 스승은 법첩을 놓고 쓰게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본인이 글을 잘 쓰더라도 왕희지나 추사보다 잘 쓰기 어렵듯 도덕을 배워도 대종사님을 능가하기 어려우니 대종사께 직접 맥을 대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산종사는 “도덕가에서 내가 공부해 내 방법대로 가르친다는 것은 안 될 말”이라며 “누구든지 정전, 대종경 대로 공부해 2세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성으로 일관해온 삶, 그리고 스승께 직접 법맥을 대도록 이끄는 운심처사가 새삼 무엇보다 특별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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