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집' 하면 윤서네 집이 떠오른다고 할 정도로 남들은 우리 가정을 모범적이고 반듯한 가정으로 보았다. 원불교 청년회 때 만나 ‘원불교인'이기 때문에 다른 여러 가지 조건들은 따져볼 생각도 하지 않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결혼해서 한 7~8년은 아침저녁 함께 심고 드리고 공부하고 수지대조하고 서로 믿고 공경하며 그런대로 잔잔한 기쁨들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러나 결혼하면서부터 1번은 부모, 2번은 형제, 3번은 처자식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남편이 몇 차례의 보증문제로 얽히면서 남편에 대한 신뢰는 깨지고 그야말로 고단한 부부사이가 되었다.

교당에서는 사회를 도맡아보며 우리 교법에 대한 교리도 밝은 분이 어떻게 우리 계문도 못 지키고 부부의 도도 지키지 못한단 말인가? 그런 남편이 이중인격자로 보이면서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2001년 수계농원에서 있던 마음공부훈련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동안 머리에 이고 있던 무거운 짐을 꼭 해결하고 가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나의 괴로움을 일기로 적어서 장산종사님 앞에서 발표를 하였다. 그 때 사회를 보시던 당시 박선태 교무님이 “나는 다중인격자인데…" 하고 말씀하시는데 내 머리에 이고 있던 무거운 돌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그 동안 ‘이중인격자는 나쁘다' 라는 잣대를 갖고 스스로를 괴롭혔던 나를 보았고 나 역시 변화무쌍한 다중인격을 가지고 있음을 자각하는 순간 나는 자유로움 속에 평안을 얻게 되었다.

시부모님과의 갈등문제는 장산님께서 “은혜의 소종래를 생각해보라"시며 “사랑스런 내 아이들은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감정을 해 주셨는데 그 말씀에도 나의 업장은 많이 녹아내렸다.

수계농원에서 만난 마음공부는 그 동안 권선징악적인 경전공부와 법회참석만으로 원불교 신앙인이라고 믿어왔던 나에게 정신의 자유를 넉넉히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 교법은 도덕적 사실이 아닌 사실적 도덕훈련임을, 우리들의 원래마음에 대조하는 용심법이 바로 정신개벽임을 알게 되었다. <서청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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