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수양

박혜훈교무의 정전강의19

빗줄기가 오락가락 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살이 들판에 가득하다. 오랜만에 드높고 맑은 하늘을 마음껏 바라보았다. 내 마음까지 맑고 투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 모두의 본래 마음은 청명한 하늘과 같은 것이 아닐까. 쉴 틈 없이 비집고 올라오는 많은 번뇌와 허망한 상념들조차 맑은 하늘빛에 그 자취를 잃어버리는 듯하다.

정신수양은 청명한 하늘과 같은 우리의 본래마음을 찾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정신이란 마음이 고요하고 맑아서 차별하거나 집착하지 않은 마음바탕이다. 먹구름이 맑은 하늘을 가리고 어두움이 밝은 태양빛을 가리듯이 우리의 마음 바탕도 수 없는 번뇌 망상과 끊임없이 일어나는 욕심의 불길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수양은 닦고 기른다는 뜻이다. 욕심과 번뇌를 닦아낸다는 것이며 고요하고 맑은 본래 마음을 길러 보존한다는 것이다.

삶이 불안하고 고통스럽다고 한다. 살아가는 동안 예측하지 못한 위험이 많다고 생각하여 늘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불안과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지, 위험은 늘 밖에서 오는 것인지 돌이켜볼 일이다. 불안과 고통을, 그리고 밖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위험을 제대로 바라보면 분명히 그러한 모든 것은 나의 내면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좋은 것을 가져야만 행복해 질것만 같지 않은가. 아직은 내가 가진 것이 하찮게 여겨져 불안하지 않은가. 다른 누군가와 비교해서 더 잘났으면 좋겠고, 많은 것을 자랑하고 싶지 않은가. 헐벗고 배고픈 사람에게 눈길을 주기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을 바라보며 상대적 빈곤감에 고통을 느끼지 않는가.

불안과 고통을 느끼는 내 삶에는 분명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의 불길이 내재하고 있다. 어쩌면 삶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는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천지만엽으로 벌여가는 이 욕심을 제거하고 온전한 정신을 얻어 자주력(自主力)을 양성하기 위하여 수양을 하자는 것이니라.” 라고 하셨다. 천 개의 나뭇가지와 만 개의 이파리가 펼쳐지듯 커져만 가는 욕심을 제어하고, 본래의 일원상과 같은 마음바탕을 회복하기 위하여 정신수양이 필요함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염불이나 주문을 외우는 것, 맑고 고요한 마음을 기르는 좌선, 한 마음 오롯하게 모아 지성으로 기도를 올리는 것은 정신수양을 위한 중요한 방법이 된다.

멈춤 장치 없이 달려가는 욕심이라는 차를 멈추어보자. 맑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도록 가리고 있는 욕심의 커튼도 걷어야 한다. 참 마음이 참 주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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