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 비상 400'희망의 날개를 펴다
10여 년을 기다려온 교당 신축
교도와 지역민을 위한 문화교화


▲ 방길터 교무 / 교화연구소
부산대교와 영도대교를 건너 만나는 영도는 해안 절경이 아름답다. 부산의 상징인 오륙도와 태종대를 품은 곳이다. 영도의 원래 이름은 절영도(絶影島)였다. 애환이 많았던 곳이기도 했지만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가 빨리 달리면 그림자가 못 따라 올 정도라 하여 끊을 절, 그림자 영을 붙여 절영도라 불려 졌다. 영도는 말을 방목하기에 적당한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어 예로부터 나라에서 경영하는 국마장(國馬場)이 있었으며 명마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또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해운대에서 영도를 바라보면 마치 학(鶴)이 남쪽으로 나르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하여 청학이란 이름이 유래되어 오늘의 청학동이라는 동명도 유래된 것이라 한다.

청학동 영도구청으로 오르는 길 언덕을 따라 오르니 높이 솟아있는 일원상 상징탑이 반갑게 맞이한다. 주유소 아래 골목길에서 30여 미터쯤 바라만 봐도 넉넉해지는 청학교당은 신축을 마치고 봉불을 앞둔 모습이다.
▲ 방길터 교무 / 교화연구소
교당에 들어서자 부처님 오신 날 행사 끝이라 박원중 부교무와 임양전 교도가 관등 정리에 여념이 없다. 3층 생활관에는 기재원 교무와 이원정 봉공회장, 천경진 교도가 이삿짐을 풀다 반갑게 맞이한다. 새집으로 이사와 정리정돈에 바쁘게 보내고 있다.

기 교무는 “10여 년을 기다려온 교당 신축이라 교도들이 제일 즐거워해요. 모두가 그동안 청학교당에서 재직하셨던 모든 교무님들의 노고와 교도님들의 간절한 염원과 정성이 한데 어우러져 이룬 금자탑" 이라면서 안내를 했다.

부산직할시 영도구 청학2동 48-2번지에 자리한 청학교당. 대지 991㎡, 건평 737㎡로 3층 건물에 1층은 어린이집 3개 반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 2층 대법당은 유아실이 있고 법신불 일원상 뒤 공간을 영모전으로 만들어 의식교화를 생각했다. 3층은 소법당과 생활관으로 연결돼 생활에 편리함을 갖추었다. 옥상은 인조 잔디로 녹색공간을 만들어 문화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성도영 회장은 “교당 신축을 통해서 이 지역의 묵은 업장이 소멸되기를 기원한다"면서 “앞으로 교당교화가 더 활성화 될 수 있을 것" 이라며 희망에 차 있다.

기 교무는 그동안의 건축과정에 대해 “교당 신축하기에 참 어려움이 많았던 교당입니다. 특히 전임 교무님들이 어렵게 매입한 땅이 재개발지역 선정 등의 이유로 주민들의 반대에 결국 건축하지 못하고 새로운 부지를 다시 매입하게 됐어요. 그 부지가 현재 신축된 부지인데 또 이곳은 주유소 유류저장 탱크가 50m 가까이 있어 교당은 신축할 수 있지만 어린이집은 신축할 수 없게 돼 어려움에 봉착했죠. 몇 달이 지나 행정 착오임을 통보받고 모두의 숙원사업이 이뤄지게 됐어요. 모든 것에 법신불사은의 위력을 받았어요" 라고 말했다.

▲ 의식교화를 준비한 법신불 일원상 뒤 영모전
부회장 임성일·김소현 부부교도는 “이 과정에서 교무님과 교도들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은 들었지만 교도들의 결속력은 더한 것 같다"고 말한다.

천경진 교도는 “기금마련 위한 갓김치 다듬기는 잊혀지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옆에 있던 이원정 봉공회장은 “밥을 집에서 못 먹고 교당에서만 먹게 되니 우리 집 쌀이 남아 논을 살 정도라"고 말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만큼 교당을 내 집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지내온 교도들의 결정체이다.

기 교무는 “원기100년을 앞두고 ‘청학 비상400'으로 비전을 선포했다"며 “이번 교당 건축도 원기100년을 향한 교당교화 비전의 일환" 이라고 말했다.

청학교당은 30~50대가 가장 많아 젊음이 넘치는 교당이다. 앞으로 교당 교화협의회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교화활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교화활성화를 위해 신축된 교당에서 교도가족과 지역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교화로 영화감상, 음악회, 송년의 밤 등도 계획하고 있다. 특히 해양대학교가 인접해 대학생교화도 준비 중이며, 영모전 설치로 의식을 통한 교화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이런 청학교당이 5월25일에 봉불을 갖게 된다. 이날 교도일동은 종법사 상을, 회장 성도영 교도가 교정원장 상을, 부회장 임성일 교도와 오연화 교도가 교구장 상을 받게 된다.

▲ 의식교화를 준비한 법신불 일원상 뒤 영모전
원기55(1970)년12월5일 영도교당에서 교단 반백주년 기념사업으로 설립된 청학교당은 원기56년 3월 김광인 교무가 초대 교무로 부임해 원기61년 석포교당을 연원교당으로 설립했다. 이어 오은성 교무는 한문교실을 열었다. 김성효 교무는 유아원을 설립해 지역교화와 아울러 어린이, 학생, 청년회를 결성했다. 태성실 교무와 김교선 교무는 법당을 리모델링해 이안봉불을 했고, 이묘신 교무와 탁상은 교무는 교당신축을 위한 기금을 모아 동삼동에 2백여 평의 땅을 매입했다. 이어 성기윤 교무와 박진성·이성만 교무 재직 시에는 매입한 대지에 교당을 신축하려 동분서주 했으나 시행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이러한 수고로움들은 오늘의 청학교당을 봉불하게 한 주춧돌이 됐다.

돌아오는 길에 옛 교당을 들러보았다. 청학교당 교화 4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이렇게 작은 둥지에서 드넓은 둥지로 이사한 청학교당이 원기100년을 향해 희망가를 부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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