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알리는 알림판

세 살배기 녀석이 흙장난을 하던 손으로 덥석 과일을 집어 입에 넣자 아이 엄마는 무서운 얼굴로 "안 돼!" 하고는 입에 들어간 손을 뺀다. 여섯 살 장난꾸러기가 어디서 잡았는지 벌레를 가지고 장난을 치니 또 아이 엄마는 "하지 마!" 하며 말린다. 어린 자녀를 기르다보면 '하면 안 된다.', '하지 마라' 라는 소리를 참 많이 하게 된다. 지금 해서는 안 되는 행동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올지 알기 때문에, 잘못된 행위로 인해 자녀가 상처와 고통을 받지 않을까 염려하는 부모의 지극한 애정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녀의 잘못된 행위를 제어하듯 대종사께서 우리 모든 중생을 향하여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반드시 지키도록 내려주신 것이 바로 계문이다.

계문은 주로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하는 조목으로 되어 있는데, 원불교 계문은 삼십 계문으로 보통급 십계문, 특신급 십계문, 법마상전급 십계문을 단계적으로 받아 지킬 수 있도록 했다.

보통급 십계문은 처음 입교한 사람에게 주는 계문으로 주로 살생, 도둑질, 간음과 같이 몸으로 지을 수 있는 무거운 죄를 금하는 조항을 말한다. 특신급 십계문은 보통급 십계문을 지킬 수 있고, 특별한 신심이 세워진 사람이 받는 계문이다. 특신급 십계문은 주로 입으로 짓는 죄, 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쉽게 지을 수 있는 죄업을 금하는 조항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특신급 십계문을 잘 지킬 수 있게 되면 법마상전급 십계문을 받아 지킬 수 있다. 법마상전급 십계문은 주로 스스로의 마음에 비추어 대조하는 열 가지 조항이다. 이 모든 계문을 잘 지킬 수 있게 되면 계문에 묶이지 않고 자유에 맡겨도 부당한 일과 당연한 일을 미리 알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업으로 생계를 삼는 교도가 생계로 인하여 계문을 범하고, 이로 인하여 퇴굴심이 난다고 하자, 대종사께서는 "그대들의 받은 삼십계문 가운데에 그 한 계문은 비록 범한다 할지라도 그 밖의 스물아홉 계를 성심으로 지킨다면 능히 스물아홉 선을 행하여 사회에 무량한 공덕이 나타나리니,…"라고 하셨다. 한 계문에 얽매이는 마음보다 한 계문 한 계문을 소중히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살려 공부하라는 큰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하지 말라'는 조항은 나를 둘러싼 모든 존재가 곧 은혜임을 자각하고, '더 큰 은혜를 실천하고 다짐하라'는 또 하나의 메시지이다.

계문은 진리에 합일된 삶을 위한 과정 속에서 내 몸과 마음을 일체화하도록 이끌어주는 알림판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