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마주하는 용기

계절이 바뀌면서 주위 사람들이 감기몸살을 앓고 있다.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은 기침과 고열 때문에 힘들지만 책상 앞에 앉아 있어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심한 경우 병원에 입원치료까지 받고도 도대체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병이 들었으면 병만 나으면 될 것 같은데 그 병으로 인해 온통 생활전반의 균형이 무너진다.

병의 전염성 못지않게 병을 앓는 것 자체가 독특한 파급효과가 있어서 병자는 물론 가까운 주변사람들까지 함께 고통을 감수하며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병증이 깊은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 없이 고통도 또한 배가 되는 듯하다.

누구나 병이 들면 고통을 감수해야 하듯이 사회도 병이 들 수 있고, 그로 인하여 모두가 함께 병의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다. 수많은 문제 상황, 쉴 새 없이 등장하는 병리현상들은 곧 사회가 병들었음을 말해주지만, 보이고 드러나는 현상적인 모든 병의 근원은 결국 만물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병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자기 잘못은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하는 것만 많이 드러내는 것, 부정당한 의뢰생활을 하는 것, 지도받을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를 잘 받지 않는 것, 지도할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로써 교화할 줄 모르는 것, 착한 사람은 찬성하고 악한 사람은 불쌍히 여기며 이롭고 편안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해롭고 괴로운 것을 스스로 가지는 공익심이 없는 것 등의 마음병이 병든 사회를 형성해 가는 것이다.

우리가 병이 들면 제대로 병을 진단하여 빨리 병을 치유해야 하는 것처럼 병든 사회를 치료하는 방법도 다르지 않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사람 사람으로 하여금 안으로 자기를 반성하여 각자의 병든 마음을 치료하게 하는 동시에, 선병자 의(先病者醫)라는 말과 같이 밖으로 세상을 관찰하여 병든 세상을 치료하는 데에 함께 노력하여야 할지니,…" 라고 하여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의 병을 치료함이 병든 사회를 치료하는 우선적인 방법이 됨을 밝혀 주셨다.

찬란하고 편리한 물질만능의 분위기에 파묻혀 자칫 병이 든 것조차 애써 외면하려고 할 수도 있다. 병의 근본을 찾는 냉철한 성찰의 과정은 아픔과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아픔과 마주하는 용기, 자신과 우리라는 공동체에 대한 쓰라린 비판의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병든 세상을 향한 치료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인생의 요도인 사은 사요와 공부의 요도인 삼학 팔조라는 의술과 약재를 통하여 건전하고 평화한 사회라는 완전한 치유의 길을 함께 밟아 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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