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원 교무ㆍ원창사업부

올해가 벌써 교무생활 19년째이다. 부교무 발령을 받고서 가끔 모일 때마다 부임지가 어쩌니 저쩌니 교무님이 잘해주니 못 해주니 이야기 하면서 시작했다. 지금은 같은 동기들이 대부분 주임교무나 기관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시 한 번 세월의 신속함을 느끼게 한다.

그동안 교당에서 근무해 오다가 작년부터 기관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임지와 임무가 바뀌면서 시간이 지남으로써 그 동안 생각도 많이 바뀐 것 같다. 살아오면서 작은 알음알이들이 뭉쳐 큰 알음알이를 만들었지만 내 생각을 강하게 느낄 정도로 변화시킨 것은 훈련이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많은 훈련을 받아왔지만 내가 인생을 돌아볼 정도로 강하게 느낀 첫 훈련은 '12회 만덕산 동선'이었다. 승산 법사님의 일원상 법문은 초심의 내가 진리에 대한 관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다음은 '수계농원 정전마음공부'였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말씀이 "모든 설교 예화는 자신에게서 찾아라"였다.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서 발견하라는 대명제인 것이다.

최근에 내 자신을 제대로 보여준 훈련은 '최고의 인연, 행복한 가족캠프'다. 관계(경계)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자신에게 있음을 확연히 보여준 훈련이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사람이 나에게 가장 고마운 인연이라는 것이 허튼 소리가 아닌 사실임을 철저히 깨닫게 해주고 내면 깊은 무의식 속에 감춰진 포장들을 걷게 해주는 훈련이었다. 권도갑 교무님 당신이 가족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극복하고 그 과정을 프로그램화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최근 그동안 까닭 없이 살아왔던 자신을 돌아보면서 마음 깊이 참회의 눈물을 여러 번 흘렸다. 부교무 시절 '교구장님께서 일을 독단으로 처리하고, 회의를 무시하고, 무엇보다 사람을 중요시해야 하는데 일을 더 중요시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그런 모습이 더 있었음에도 나를 되돌아보지 못했다.

나도 각종 회의에서 내 의견을 너무 강하게 주장하고, 가정에서도 이기적으로 대했고, 여러 친목 모임에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고 내 말 하기에만 바빴던 나를 참회 한다. '교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하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 교무들이 교단을 떠날 때, 아닌 행동을 할 때, 아닌 모습을 볼 때나 들을 때, 이런 말을 너무 많이 했다. 나는 수도인의 기본 일과를 얼마나 꾸준하게 지키고 있는지, 나는 교무로써 계문을 어기고도 '다른 사람은 모르니 괜찮아'하면서 덮어주고, 사실 나의 마음은 삼독오욕으로 물들어 있으면서도 정작 나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문제라고 너무 많은 말을 했음을 참회한다.

'수도인은 사업보다 공부를 해야 제대로 된 공부인이지'라고 주장했다. 사업하는 교무나 기관에만 근무하는 교무는 속으로 무시한 적이 많다. 실제로 기관에 근무하는 교무님들로부터 그런 말을 가끔 들을 때면 '그래 내 판단이 옳았어'하고 자만에 빠졌다. 공부를 먼저 해야 교화가 따르고 교화를 먼저 생각해야 사업이 따른다고 하셨지 공부만 하고 교화나 사업을 하지 말라고는 안하셨다. 그러나 나는 공부와 사업을 둘로 보고 속으로 많은 교무님들을 무시하며 살아 왔으니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 참회한다.

오히려 이렇게 부족한 나를 지금까지 꼴 봐준 주위 인연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포장 되어진 구석구석을 세밀히 밝히고, 혈심어린 보은자로 당당하게 거듭나는 자신을 바라보며 희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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