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가장이 부도를 내고 잠적했다. 칠순의 그의 아버지가 아들 대신에 빚 독촉에 시달렸고, 견디다 못해 끝내 목숨을 끊었다. 숨어있던 가장이 돌아와 죄책감으로 고민하다가 부인과 어린 남매를 데리고 동반자살을 했다. 이 비극은 영화의 내용이 아니다. 1998년 IMF 당시 우리 주변 곳곳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중의 하나다. 이 보도를 접한 우리는 끝없이 추락했고, 그들만의 천국 여의도의 정치인들을 향해 삿대질하며 분노했다. 그로부터 10년, 우리는 지금 그때보다도 더 혹독한 시련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제 어쩔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절망과 희망은 동전의 양면 같은 한 몸으로 다가온다. 그것들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하나-비>는 절망의 영화다. 주인공인 중년의 형사는 고통뿐인 삶의 무게를 혼자서 감내해야 한다. 자식은 죽고, 아내는 암으로 시한부 인생이다. 동료들마저 야쿠자의 습격으로 죽거나 불구가 된다. 그에게는 비상구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이 어쩔 수 없는 절망 앞에서 그는 아내와 함께 자살을 선택한다. 우울한 분위기, 표정 없는 얼굴, 피비린내 나는 폭력 등이 가장 일본적인 색채로 삶의 비극을 극대화 시킨다.

팀 로빈스 감독의 <쇼생크 탈출>은 희망을 강조하는 영화다. 어느 날 한가정의 가장이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그는 사회에서 누렸던 부와 명예를 한순간에 박탈당한 채 잔인한 폭력과 모멸로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되는 쇼생크 감옥에 갇힌다. 그러나 바람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는 극단의 절망 속에서도 그는 결코 삶의 끈을 놓지 않는다. 어둠 속의 빛과 같은 희망은 복역 19년 만에 그를 감옥에서 탈출하게 한다.

그가 남긴 한마디 대사가 감동적이다. "인간은 빼앗길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가슴 속의 희망이라는 것이다"

그래, 어쩌겠는가. 우리는 살아야한다. 이제는 서로 희망을 전파하자.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삶이여 그래도 다시 한 번" 이 문구는 니체의 말로 민규동 감독의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 나오는 영화자막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가 봐도 크고 작은 불행을 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 불행으로 파멸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들의 삶을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절망의 끝에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고, 그것을 소중하게 행복으로 키워 나간다.

우리가 날마다 거리에서 직장에서 전철에서 부딪치며 만나는 그 많은 사람들이 바로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그들이다.

오늘만이라도 우리가 살아 있음에 환희를 느끼고, 그동안 눈길한번 주지 못했던 일상의 작은 것들에 따뜻한 마음을 주고, 소홀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우리에게 닥친 이 절망을 극복해나가자. 그래도 이 삭막한 세상에 여기저기 인정과 사랑이 남아 있어 우리는 계속 살아가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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