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당 손법선 교도
제주교당 문지성 교도
둔산교당 조혜정 교도

 "교정 교화로 그늘진 곳에 대종사님 법 전합니다"

대구교당 손법선 교도

원기 93년 무자년을 보내며 돌이켜 보면 새로운 결심을 하고 새해에 이루고 싶은 멋진 서원을 꿈꿉니다.

그러나 항상 아쉬움과 후회만 남습니다. 그 대단한 결심과 서원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공부가 모자람 때문만이 아닙니다. 단지 실천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행동과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아무리 거창한 서원도 큰 공부도 모두가 망상일 뿐인것을... 천번 생각과 천가지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의 실천에 세상을 바꾼다라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뒤돌아보면 받기만한 한해였던것 같습니다.

재가로써 나 만큼 여러 교무님들의 배려와 은혜를 입은 사람도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11월에 전국원청지도자대회에서 공부가 부족하고 시점이 짧은 보통급도 검정되지 않은 새내기 재가로써 특강시간에 신앙담을 말할수 있었던 것은 교무님의 배려와 은혜가 아니고서는 언감생심 꿈이나 꿀 수 있던 자리였을까 싶습니다.

신년 하례식때 올해 목표를 원불교 신앙인으로써 절대 긍정, 절대 은혜, 절대 영광으로 정했습니다. 저의 서원인 교정교화가 대구지역에서 하루 빨리 꼭 이루어지고 교화쟁이로 살겠다고 다짐한 한 해였습니다. 과연 서원에 걸맞게 얼마나 실천했던가? 돌이켜 보면 미흡하고 부족했지만 소득도 많았습니다.

작년부터 실천해오던 지산복지관의 환우와 청구재활원의 장애우 목욕봉사와 소년원 법회, 매주 토요일의 동명시민선방에도 열심히 참석하고 그토록 서원해왔던 교정교화도 서울교구 교정교화위원회 윤경중 교도님의 배려 속에 6월부터 대구에서도 첫 걸음을 시작했습니다. 교무님들과 법동지들의 배려와 은혜속에 하나하나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으니 얼마나 가슴뛰고 마음 설레는지 모릅니다.

소설가 황석영님이 1980년대 북한을 다녀와서 "그곳에도 사람은 있더라"라는 말씀처럼, 이승의 끝자락인 그늘진곳에서도 분명히 대종사님의 높은 법을 갈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감히 확신합니다.

어떤 원로님은 그것을 부분공심이라고 걱정하지만 지금은 전문화시대이기에 부분공심이 모이고 모이면 결국은 만법귀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대승적인 현안으로 볼 때 대구 경북교구의 교화발전에 크게 기여하기 위해서는 군종교화와 원음방송국설립 같은 보다 큰 서원에 신심, 공심을 크게 가져야 할 때인데, 법기가 작은 나는 입교초기부터 교정교화에만 오로지 서원해 왔기에 대구에서도 천만가지 아이디어보다 행동하는 군종교화의 공심, 원음방송국 설립에 공심의 기운이 넘치는 도반님들이 하루 빨리 많이 나서 주기를 기원해 봅니다.

무자년을 보내며 교정교화의 초발심을 갖게 해주신 교무님! 항상 저의 가난한 영혼의 멘토가 되어주십시오. 나날이 법력증진 하십시오.

 

외환위기로 직장 잃고 새벽기도… 수주 위력

제주교당 문지성 교도

잠을 깨우는 자명종 소리에 오늘도 눈을 떴다. 새벽 4시 40분. 박차고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고 세수와 면도를 하고나서 집을 나선다. 새벽 공기가 상큼하다. 이렇게 시작한 새벽 기도가 5개월로 접어들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원불교 교도라면 당연한 일과라 생각되건만 이렇게 생활화가 되기까지에는 나름대로 갈등과 마음고생이 많았다.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고 가정이 파괴되면서 그 엄청난 방황 속에서 헤맸던 나였기에 더욱 그랬다. 서울 생활을 접고 중,고생 애들만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새로운 사업(건설업)을 시작하였으나 운영자금이 넉넉하지 않아 과감한 공격 경영을 시도하기도 어려웠다. 공사 수주 역시 여의치 않았으나 고정비는 계속 나가는 형편이었기에 어려움은 계속 쌓여만 갔다.

신앙생활에 대한 회의마저 느껴지고 특히 학생회 출신 교도이기에 비아냥거리는 것 같아 자격지심에서 교당 나가기가 미안할 정도였으니 그 심적 갈등은 언어도단이라고나 할까.

그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하듯 교무님께서 6월 어느 날 새벽기도를 권유 하시는 게 아닌가. 불량 학생이 담임선생님에게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학생처럼 창피하기도 하고 겸연쩍기도 하고…. 하여튼 알뜰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동안 직장생활에 사회생활에 쫓겨 나를 뒤돌아보는데 소홀했다. 이럴 즈음에 교무님의 기도 권유에 용기를 얻은 것이었다.

그래! 기도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자. 교당에서는 이미 교단100년 기념성업의 일환으로 산천단 개발을 위한 500일 기도를 시작한 터였다.

평일에는 매일 새벽에 교당에서 기도하고 일요법회에는 법회시간 전에 합동으로 기도를 하기 때문에 나 역시 편의상 일요법회에 맞추어 하는 기도에만 동참하고 있었으며 기도비도 경제적인 어려움만 내세우며 뒤로 미루고 있었는데 마침 법훈편 64장을 사경하게 되면서 그동안 연고라는 핑계로 하루 한 갑 씩 피워왔던 담배를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담배 한 갑에 해당하는 담배 값에 오백 원을 보탠 삼천 원을 매일 아침 기도비로 내고 있다.

7월 1일부터 시작한 기도가 100일이 지나도 공사 수주가 이루어지지 않자 교무님과 상의 하여 사무실에서 10월 9일 기원 독경을 하고 정성을 들였다. 그 기도의 정성이었을까, 그러고 나서 22일 후 공사수주가 이루어 졌다. 2년여만의 관급 공사 수주라 무척이나 감사하고 고마웠고 눈물겨웠다. 그동안 쌓였던 어려움이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부분이 해소될 수 있었다.

이것이 하나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기도의 위력으로 믿고 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사은 백배를 올린다.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죄를 참회하면서 절을 올린다.이러한 참회하는 마음과 기도하는 자세로 이생을 다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일원상을 신앙하고 수행함으로써 얻어지는 나의 삶

둔산교당 조혜정 교도

나의 생을 놓고 볼 때 올해는 일대 변혁의 길로 들어선 해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개과천선을 한 때이다. 그러니 날마다 행복할 밖에 없다.

마음이 언어와 경계와 일체 우주만유에 속아 이리저리 헤매던 지난 날 나는 어찌 그리 방황했던지. 마음공부를 한다지만 경계를 대할 때마다 끊임없이 마음이 요란해지니 왜 그럴까? 깨닫지 못해 그럴까 하여 좌선이나 기도 등을 통하여 깨달음을 기다리는 일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일어나는 번뇌를 없앨 수 없으니 어느 세월에 깨달음을 얻을까?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 드디어 진리의 길로 이끌어주신 스승님을 만났다.

"일체 우주만유를 일원상에 귀일시키라! 우주만유는 오직 마음이 나타난 바이다. 그러니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하지 말라. 나의 성품이 육근을 통해서 보고 듣고 아는 것이지 내 눈이 보고 귀가 듣는 것이 아니다. 일념미생 자리는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언어도단의 입정처이며, 모든 형상의 실상이 자아가 없는 입정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 삿된 소견을 작용시키지 말고 오직 일원상 진리인 입정이 주인공이 되게 하라. 밥도 일원상으로 먹고 말도 일원상으로 하라. 그러면 경계의 전후가 한결같아져서 일원의 입정에 합일하게 된다. 이 세상은 오직 침묵의 입정만 있을 뿐이니 망념을 놓아 자아가 없으면 그대로 부처이다. 번뇌는 다스리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며, 깨달음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번뇌는 망념이며 그 실상이 공(空)함을 관조로써 깨쳐라. 그러면 번뇌가 그대로 보리가 된다. 상대가 내게 욕했을 때 입정을 지혜로 관조하면 입정과 소리가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입정처는 색(色)도 아니요 공(空)도 아님을 알 것이며, 반드시 번뇌를 의지해서 공(空)을 닦아야 공(空)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스승님의 실제적인 가르침을 받드는데 바쁘면서도 마음에 일이 별로 없다. 방황은 끝났다.

수행은 오직 일원상으로써 경계를 대하는 것이니 그대로 실행할 뿐이다.

또한 스승님의 지도로 '일원상 대례'와 '선춤'을 수행하고 있다. 이 두 수행도 귀일은 일원의 입정이다. '일원상 대례'는 서서 합장하고 호흡을 길게 해서 몸을 구부릴 때는 날숨으로, 일으킬 때는 들숨으로 하여 간절히 절한다, 절하면서 호흡을 바라보며 마음이 입정으로 한결같게 한다. 하루에 30분 이상씩 수행하는데, 수승화강 되어 심신이 상쾌하다.

'선춤'은 방식이 없다. 오직 일원의 입정으로 몸의 움직임과 멈춤을 관조로써 깨달음에 머물 뿐이다. 동과 정이 하나가 된다. 남편 아침 식사 중에도, 과일 들고 먹으면서도 춤을 춘다. 한 손에 과일 들고 춤춰 보시라! 정말 재미있다. '선춤'을 계속 하니 춤을 추되 몸을 느끼지 못한다. 이 몸은 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함을 알겠다. 일어나는 번뇌를 바라보아 그 실상이 空함을 깨쳐 성품을 밝히는 '선춤'과 '일원상 대례'로 몸과 마음이 활기에 넘쳐 살아나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다시는 중생의 삶을 살지 않으리라! 부처의 삶을 살리라!

스승님께서 이끌어주시는 덕으로 조혜정 팔자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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