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의 수행

일원상의 수행은 스스로 존재하는 진리의 사진인 일원상을 신앙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없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허망하기 마련이지만 우리들은 존재하는 진리의 사진인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있고, 진리의 내용도 자세하게 밝혀 주셨으므로 수월하게 표준을 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버선 하나를 만들 때에도 본(本)이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이 본보기가 있고 닦아가는 방법도 있어서 과거의 교법으로 수십 생을 닦을 것을 한 두 생의 노력으로 닦을 수 있는 것이다.

일원상의 진리 안에서 성품의 원리를 발견하고 그 원리 따라 마음을 살피고, 마음을 기르고, 마음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품은 본연의 체(體)요, 성품에서 정신이 나타나나니 정신은 성품과 대동하나 영령한 감이 있는 것이며, 정신에서 분별이 나타날 때가 마음이요, 마음에서 뜻이 나타나나니 뜻은 곧 마음이 동하여 가는 곳이니라"(법어 원리편12장)라고 말씀해주신 내용을 일원상의 진리에 대입해 보자.

'일원은 일체 중생의 본성(성품)이며, 그 성품은 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며, 선악 업보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 명상이 돈공한 자리로서' 까지가 성품 자리의 모습이다.

정신과 성품은 같은 것이나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말한 정신은 정(靜)한 성품가운데 마음이 들어있는 공적과 동(動)한 마음 가운데 성품이 들어있는 영지의 광명(정신)을 따라 대소유무에 분별이 나타나서 선악 업보에 차별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진리를 깨달아 대소유무의 이치를 알고 대소유무의 이치에 바탕하여 시비이해를 판단하여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가 있다.

정확한 판단으로 시비와 이해를 판단(사리연구)하여 지은대로 받게 되는 인과의 이치를 믿고 깨달아서 우주만유(육근)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선업은 짓고 악업은 짓지 않도록 마음을 사용하는 것이 작업취사 공부이다.

일원상을 표준 삼아서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알고, 기르고, 사용하자는 것이 일원상의 수행이다. 성품과 정신과 마음과 뜻이 원래는 하나이나 작용을 멈추면 성품에 합하고 작용을 하면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신수양이 잘 되어야 사리연구를 잘 할 수 있고, 사리연구를 잘 하여야 작업취사 공부를 잘 할 수 있으며, 작업취사 공부를 잘 하여야 혜복을 구할 수 있다. 있는 진리를 그대로 믿고 닦아나가는 것이 일원상의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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