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윤 감독의 영화 속 세상읽기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얼굴이 반반한 여자는 영악했다. 사랑과 결혼을 분리하여 사랑은 잘생긴 젊은 남자하고 즐기고 결혼은 돈 많은 의사하고 한다. 남편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이보다 더 신나는 인생이 있을까? 분명 이 여자에게 결혼은 미친 짓일 것이다.

이 영화가 맛보인 가족파괴의 싹수가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에서 만개했다.

제목 그대로의 내용이다. <바람난 가족>의 그들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었다. 같이 살았으나 아무도 노력하지 않았다. 형편없는 콩가루 집안이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섹스와 오르가즘이었다. 남편도 아내도 어머니도 욕망에 따라 각자 제갈 길로 가버렸다. 마침내 그들은 해방했다. 거침없는 자유를 얻었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한가?

엄마에게도 꿈이 있었다. 뮤지컬배우가 꿈이었다. 그런데 장님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상상 속에서만 노래하고 춤췄다. 그것이 일만하는 엄마의 유일한 즐거움이었으리라. 그러나 관객들은 슬펐다.

엄마의 어둠 속의 춤과 노래는 세상을 보고 싶다는 절규의 다름 아니기 때문에…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는 2001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지극히 통속적인 영화가 이런 영광을 누린 것은 심사위원들도 엄마의 사랑에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 아닐까.
내용은 이렇다. 엄마와 아들은 집안 내력으로 머지않아 장님이 된다. 엄마는 아들의 눈을 수술해주기 위해 공장에서 밤낮으로 일한다. 그러나 수술비를 다 마련하기도 전에 엄마는 시력을 잃게 되고 공장에서 쫓겨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아들의 수술비를 훔친 경찰관을 죽이게 되고, 끝내 사형을 선고 받는다. 형장으로 끌려가기 직전 엄마의 친구가 면회를 왔다. 친구가 묻는다. "왜 자식을 낳았소? 당신처럼 눈이 멀게 될 줄 알았으면서" 엄마가 흐느끼면서 대답한다. "안아보고 싶었어요. 내 품에."

1970년대의 청소년들에게 이소룡은 꿈과 희망이었다. 호랑이 울음 같은 괴성을 지르며 전광석화의 동작으로, 또는 바람을 가르는 쌍절봉으로 순식간에 적을 쓰러뜨렸다. 그것은 눈속임 없는 완벽한 예술 그 자체였다.

이소룡 만큼이나 오랫동안 나의 우상으로 군림한 배우는 없었다. 1973년 <사망유희>를 찍던 이소룡이 32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한동안 나를 허무의 세계로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 즈음에 파란 눈의 총잡이가 나타났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 그가 출연한 서부영화에는 한순간의 결투로 목숨을 거는 지독한 허무가 있었다. 클로즈업된 무표정한 얼굴의 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할리우드의 최고의 감독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 등을 거머쥔 그가 <체인질링>으로 다시 나타났다.

이 영화는 아들을 찾기 위해 부패한 경찰관에 맞서 싸우는 엄마의 이야기로 섹스배우로만 알았던 안젤리나 졸리의 엄마연기가 빛나는 감동을 준다.

엄마가 보고 싶어 돌아왔다는 아이의 대사처럼 결국 가족이다. 보릿고개 시절, 이소룡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던 세대나 미국 대공황의 시절, 거리를 방황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세대에게 가족은 삶의 전부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지금 칼바람이 몰아치는 들판에 내몰려 있다. 어떻게 하겠는가?
가족끼리 등을 기대 체온을 느끼며 우리 앞에 놓인 절망을 극복해야하지 않겠는가.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