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송

게송은 깨달아 느낀 소감을 글로 표현한 것을 게(揭)라 하고 이 글을 찬미하여 외워 읽는 것을 송(頌)이라 한다.

이 일원상 게송은 원기26년 1월4일 대중이 모인 가운데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 하신 우리들에게 전하여 주신 전법 게송이다.

"유(有)는 변하는 자리요 무(無)는 불변하는 자리이나, 유라고도 할 수 없고 무라고도 할 수 없는 자리가 이 자리며, 돌고 돈다, 지극하다 하였으나 이도 또한 가르치기 위하여 강연히 표현한 말에 불과하나니, 구공이다, 구족하다를 논할 여지가 어디에 있으리요. 이 자리가 곧 성품의 진체이니 사량으로 이 자리를 알아내려 말고 관조로써 이 자리를 깨쳐 얻으라."

부촉해 주신 말씀대로 믿고 정진하여 깨쳐 얻으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중간 위로만 보이는 커다란 프로펠러가 있다. 이 프로펠러의 날개가 천천히 돌면서 아래로 내려 갈 때는 보이지 않고 위로 올라오면 보인다. 프로펠러가 눈에 보이면 유이며 보이지 않으면 무이다. 이렇게 계속 보이고, 보이지 않고 계속 돌고 돌아 빨리 돌면(지극하면) 위로 올라 올 때도 날개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이때가 구공이다.

날개가 보이지 않으면 날개가 없어진 것이 아니다. 분명히 날개는 그대로 있으면서 아래로 위로 보였다 보이지 않았다,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족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므로 변하기 전의 모습은 없는 것이다. 변한다는 것은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모습과 다르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변하여 가는 모습 모두가 실상(實相)이 아니다.

유와 무가 함께한 모습으로 있는 것이 실상이며 공(空)이다. 찾아보면 없는 것이 구공이며, 찾아보면 없지만 실제는 있는 것이 구족이다.

마음이 일어날 때가 유이며 마음이 소멸될 때가 무인 것이다.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일어났다 소멸되어지는 마음들이 적적성성 해져서 원적무별한 진경에 들면 구공이며 성품의 진체이고, 이 안에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구족이다.

생각으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생각을 멈추어 관조하는 것으로 깨쳐 얻어 대종사님께 보은 하는 제자들이 되는 것이 개교백년 성업에 동참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인 자신 성업 봉찬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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