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얻은바가 없어서 무소유가 아니라 무(無)소(所)유(有) 즉, 일체의 있는(有) 바(所)가 없기(無)에, 얻을 바가 없을 수 밖에 없고, 얻을(得) 바(所)가 없기(無) 때문(故)에 그 후에 관자재보살이 행한 길이 자명해 진다.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존재의 다섯 가지 구성요소인 오온이 텅 비어 실체적 아(我)가 없음을 비추어 보고 일체의 고액에서 벗어났다고 하였다.

색도 수상행식도, 오온, 12처, 18계가 다 공함을 깨달았으며 무명에서 노사에 이르는 12인연과 고집멸도의 사성제는 물론이요, 마지막으로 남은 지혜마저 없음(無智)을 간파하고 그 얻을 것 없음(亦無得)을 깨쳤으니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체가 허망한 것이어서 있는 바가 없는데도 중생이 있다고 생각하여 갈애하고 집착하여 스스로 지어 그 속에 들어가 살면서 12인연에 끌려 육도로 윤회하는 삶이 우리들 중생의 삶이다.

이제 그 있는 바 없음을 알았으니 얻을 바 없음을 알겠다. 여기가 바로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의 자리이다. 그러므로 반야심경에 있어서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의 자리는 부정에서 긍정으로 넘어가는 일대 전환점이며 조견오온개공에 뒤지지 않을 아주 중요한 자리이다.

대종사님께서는 교의품 7장에서 일원상의 진리를 공(空)·원(圓)·정(正)으로 요약해 주시고 정산종사님께서는 진공(眞空)과 묘유(妙有)와 인과(因果)로 말씀해 주셨다(법어 원리편 2).

즉 공과 원과 정이 하나로 일원상의 진리이듯, 진공과 묘유와 인과가 서로 떠나지 아니하여 한 가지 일원의 진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공이 진공이 아니고 원만구족한 진공이며 묘유를 포함한 진공이며 바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진공으로 여여자연한 무량세계를 전개하였으니 무상이 곧 유상이요, 생멸이 곧 적멸인 것이다.

무상에서 분별을 여의면 유상이요, 생멸에서 분별을 놓으면 적멸이다. '이무소득고'의 전환점을 돌아 관자재보살과 함께 우리가 갈 길이 자명해 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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