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사모하고 닮아가는 삶

참 유감이다.

입으로는 말하나 그 행실과 증득한 것이 진경에 이른 사람이 귀해서, 육안으로는 보나 심안으로 보는 사람이 귀해서, 화신불은 보았으나 법신불을 확실히 본 사람이 귀해서 유감이라는 말씀이다.

설명을 세 가지로 말씀하셨지만 실은 하나로 통하는 얘기다.

법을 증득 했느냐 못했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증득이라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그 이면의 본의나 이치까지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보이는 부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 마음까지 다 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증득이라는 것은 생각생각 걸음걸음이 그 법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증득한 것이 진경에 이르렀다는 것, 심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법신을 본다는 것은 진리와 하나가 되었다, 마음이 통해 버렸다는 얘기다.

대종사님께서 "정산종사 형제를 만난 후 그들 마음과 하나가 되었다. 그들로 인해 걱정해 본 일이 없다" 하셨다.

또한 정산종사님은 "한 번도 마음으로 대종사님을 떠나본 일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런 것이 바로 법신불을 본 것이고 심안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통하기 위해서, 하나가 되기 위해서, 증득하기 위해서 우리는 첫째, 진리를 늘 사모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에 지극히 사모하는 무엇이 있으면 그것과 하나가 된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일동일정이 다 눈에 들어오고 내면까지도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진리를 사모하고 스승을 사모하면 궁극적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알게 되는 것이다.

둘째, 늘 닮아가지 않을 수 없다. 늘 닮아간다는 것은 그대로 따라 해 보는 것이다. 아는 것과 따라해 보는 것은 다르다. 한 예로 정세월 선진이 주산종사가 했던 조리질을 흉내내 머리를 흔들며 조리질을 했다고 한다. 얼마나 불법연구회 사람들을 사모했으면 그렇게 했을까? 사모하면서 그대로 따라하다 보면 어느 날 내가 그렇게 되어있다.

아이들은 소꿉놀이 하면서 공주님처럼 말하고 왕자처럼 이야기 한다. 걸음걸이를 그렇게 한다. 먹는 것을 우아하게 먹는다.
우리가 부처님을 사모하고 스승님을 사모하면서 부처님 흉내 내보는 것, 부처님 마음 가져보는 것, 스승님 걸음흉내·소리흉내·취사흉내 이런 것들을 그대로 하다보면 내가 그렇게 닮아 가지 않을까? 어느날 우연히···.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