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법의 은덕을 깨닫고 있는가?

천지에 우로의 덕을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고 세상에 성인의 덕을 범부들은 알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날이 가문 뒤에야 비의 고마움을 사람들이 다 같이 알게 되고, 성인이 떠난 뒤에야 그 법의 은덕을 세상이 고루 깨닫게 된다고 하셨다.

과연 지금 나는, 우리 사회와 세상은, 성인이 내 놓으신 법의 은덕을 고루 깨닫고 있을까?

우리나라도 물 부족국가에 속한다. 지금도 구석구석에서 물이 없어 얼음을 깨서 옛날처럼 양동이로 물을 길어 나르는 곳이 있다.

개울 바닥이 말라붙어 농사에 물을 댈 수 없어 한숨 짓는가 하면, 사람이 먹는 식수가 부족해 날을 정해 물을 공급받는 지역도 있다고 한다.

영국은 햇빛이 부족하기에 해가 반짝이는 날이면 너도 나도 그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공원 여기저기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물과 햇빛을 이야기 했지만 천지자연의 은혜를 얘기하는 것이다.

천지자연은 만생을 살리는 생명의 근원이다. 천지자연이 무한정으로 우리에게 다 줄 것만 같았는데 천지자연도 살아 숨 쉬는 유기체였음을 지금 우리는 실감하고 있다.

이 몸의 생명을 유지하여 주는 생명적 근원은 천지은혜이다.

그렇다면 '법의 은덕을 깨닫는다'는 말의 의미는 뭘까? 저 하늘의 태양과 천지 우로의 덕은 유한한 인간의 한 생을 유지하고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부처님과 성인의 법은 유한한 인간을 무한한 삶으로 인도한다.
단촉한 인간의 삶을 무한한 복덕과 무한한 능력으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과 성인의 법이다.

즉 성인의 법은 우리로 하여금 영생과 인과를 알게 하여 한 생뿐 아닌 영생을 살게 하기에 그 위력과 광명을 무엇으로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영원한 생명, 영생의 부활, 무한한 복덕, 무한한 능력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자연을 알면 알수록 더 겸허해지고 감사하고 고마운 것임을 알듯이 우리의 법도 내가 아는 만큼 대종사님이 더 은혜롭고 감사하고 소중하고 사모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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