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의 화두 '교화·교육·자선'

대종사님께서 원불교 문을 열게 되는 근본목적은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우리는 그 개교의 동기를 이루기 위해 교화 교육 자선의 사업을 하고 있다. 일체생령을 빠짐없이 제도하기 위한 교화 교육 자선은 우리 교단의 화두일 뿐 아니라 모든 종교의 화두라 생각한다.

교화·교육·자선을 넓은 의미로 본다면 모두 교화의 활동으로 볼 수 있지만 대종사님께서 교화·교육·자선으로 범주를 구분하여 주신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서 자선·교육·교화로 단어의 순서를 바꾸어 본다. 그 낱낱의 뜻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베풀고 가르치고 변화시킨다로 해석했다.

자선(慈善)은 남을 불쌍히 여겨 선의를 베풀거나, 불행·재해 등으로 자활할 수 없는 사람을 도와줌이라 해석된다.

그런데 자력 없는 파란고해의 생령에게 자비심을 갖는다는 것은, 자비를 베푼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종교심의 발현이다.

즉, 자선은 우선 자력 없는 사람들에게 심낙원(心樂園) 신낙원(身樂園)을 베푸는 것이다.

교육은 세계를 진화시키는 근원이요 인류를 문명케 하는 기초로 배움을 받아들일 자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가르쳐 기르는 것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은 지식과 기술 등을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주어 자신을 진화시킴은 물론이요, 그 바탕으로 세계를 진화시키는 일이다. 즉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비유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화(敎化)는 가르치고 이끌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 걸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걸어간다는 것은 아는 바를 실행한다는 것이다. 화(化)라는 말이 그렇다. 되도록 하는 것인데 부처님의 법을 그대로 행할 수 있도록까지 한다는 것이다.

자선·교육·교화는 우리의 교법으로 공부하는 교도를 넘어서서 파란고해의 일체생령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부터 그리고 진화할 수 있고 자력을 얻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부처님과 같은 공부와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교화를 해서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분야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일체생령을 제도할 책임을 가진 종교에서는 교화뿐 아니라 교화를 넘어서 교육 자선이 영원한 화두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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