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이 어린이 날, 8일이 어버이 날, 18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이 연이어 들어 있는 5월은 가히 가정의 달이다. 가정은 복의 터전이며 나라의 바탕이어서 어른을 섬기고 자녀를 사랑하는 삶의 비롯이 되는 공간이다.

교단의 선진으로부터 "우리는, 가족은 있으나 가정은 없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가족은 한 집안의 구성원을 뜻한다. 가정은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을 말한다. 부모 형제인 가족의 구성원은 있지만 가장이 출가함으로 인하여 함께 생활하며 부대끼고 사랑하는 가정은 이루지 못했던 청소년기를 회상하는 선진의 말씀 속에 진한 회한이 서려있음을 짐작케 했다. 그런데 요즈음의 세상은 가장만 출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모두 출가한 모양새다.

우리의 어린이들이 '나'가 아닌 '남'을 먼저 생각하는 어엿한 어린이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어엿한 어린이가 많아야 그 집안과 나라에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 오늘날 핵가족을 이룬 몇 안 되는 구성원들이 가정 안에서 다시 사이버 세계로 각자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가정해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하고 있다. 사이버 세상에는 친구도 있고 선후배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정에서조차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없다. 청소년의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것도 가족은 있으나 가정이 없으므로 일어나는 현상일 수 있다.

나의 존재를 이 세상에 드러내주고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는 절대적인 것이다. 크기와 양을 계산하고 길이를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이다. 이 은혜로운 관계가 상극의 악연으로 만나질 수도 있는 것이 인과다. 이 은혜로운 관계를 상생의 선연으로 키워 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 하나가 자력이 없는 사람을 보호하는 일이다.

사랑이란 크고 거창하고 대단해야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작은 도움을 주는 것, 힘을 주는 말 한마디, 작은 배려 등이 세상을 밝게 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된다. 부부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우리'를 생각할 수 있는 철 든 청소년, 절대은을 잊지 않고 남을 돕는 마음, 작은 배려, 모두 용기가 없으면 실행하기 어렵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참된 가정을 만들고 지키는 일도 용기가 필요하다. 가정은 내일을 꿈꾸게 하는 희망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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