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라는 말은 관점, 경지(境地)라는 의미로 쓰이면서 대(大)자리, 소(小)자리, 공(空)자리, 유상(有常)자리에서 보면, 무상(無常)자리에서 보면, 등으로 우리교단의 진리관과 더불어 독특한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다.

일원상의 진리는 능이성 유상하고 능이성 무상하여 보는 관점에 따라서 대 자리 쪽으로 향하여 보면 상주불멸하여 유상하고, 소 자리 쪽으로 향하여 보면 성주괴공하고 생노병사하며 무상하다.

존재이면서 공간적으로 무한하고 시간적으로 무시무종이려면 유와 무를 초월해 있지 않으면 안되고 우리의 인식범주에서는 유에서 무로 무에서 유로 돌고 도는 은현자재의 모습으로 인식되어 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진리다.

그래서 묘유와 진공은 둘이 아니며 본원과 현상은 늘 하나이다. 색불이공이요 공불이색이며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인 것이다.

오직 '… 보면'의 문제 '분별'의 문제일 뿐 무상인 채로 유상이며 유상인 채로 무상이며 무시무종이며 아무일 없는 무량세계일 뿐이다.

소태산대종사는 게송에서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고 말씀하셨다. 구공(俱空)의 구(俱)는 함께 '구'자로 유와 무가 함께 공하다는 말이요, 구족(具足)자리의 구(具)는 갖출 '구'자로 부족함이 없이 다 갖추어 있다는 말씀이니 유와 무를 초월한 자리로 없는 것 없이 다 갖춘 자리이며 반야심경이 궁극적으로 가리킨 자리가 이 자리인 것이다.

"없고 없음이여! 없음마저 없으니 없는 것이 없구나! 다 있구나!" - 원만구족
"아니고 아님이여! 아님마저 아니니 아닌 것이 아니구나!" - 여여자연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우리가 어찌 다행 이 법 만나 이 공부 이 사업 하게 되었던고 생각하면 맹구우목이요 작은 겨자에 휜 바늘을 던져 뚫은 심경이다.

※ 다음호부터는 이양신 교무(만덕산훈련원)의 금강경 강의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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