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다. 심장을 내보이듯 새빨간 덩어리, 금방이라도 피를 쏟을 것 같은 장미꽃이 시들어갈 무렵, 담장넝쿨로 뒤덮인 돌담, 그 밑으로 봉숭아 채송화 분꽃이 자라고 있다.

5년 전에 부지런한 동네이장이 집집마다 꽃씨를 나눠줬는데, 귀찮기도 했지만, 버리기도 죄스러워 돌담 밑으로 화단을 만들어 그냥 건성으로 뿌렸다. 그런데 기특하게도 해마다 이맘때면 저들 스스로 자라나서 작고 귀여운 꽃을 피운다. 그중에서 봉숭아는 추억이 아련하다.

유년 시절의 이야기다. 누님이 아침저녁으로 가꾼 돌담 밑의 화단에 봉숭아꽃이 피어나면 나는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누님과 함께 두 번 정도 손톱에 꽃물을 들이곤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 할 무렵 산업화의 물결에 실려 누님은 질마재를 넘어 도시로 떠나갔고, 주인을 잃은 화단에는 잡초가 꽃보다 더 많았다. 그 후 나는 꽃물 들이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서울 사람처럼 사는 누님은 지금도 나처럼 손끝을 들여다보며 그 여름 봉숭아 화단을 추억할까?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내가 다녔던 30리길의 초등학교 앞으로 서해안고속도로가 뚫리면서 교통이 좋아졌다. 우리 동네는 저수지를 끼고 도는 산길이 산에 막혀 끝나는 바로 그 자리에 숨겨져 있다. 이러한 위치 탓에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학교와 동네밖에 몰랐고, 운 좋은 날 어머니를 따라가는 읍내가 가장 큰 세상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길은 두 군데 밖에 없다. 학교 가는 30리 들길과 읍내 가는 질마재 고갯길이다. 젊은 사람도 숨차게 넘는 질마재는 만남과 헤어짐의 산길이다. 누님이 질마재를 넘어갈 때 어머니는 동네 어귀의 당산나무 아래서 멀어져가는 누님을 보며 한참을 그렇게 서 계셨고, 어머니를 시집살이 시킨 할머니도 고모 시집보낼 때 당산나무 아래서 눈물을 훔치셨다. 그럴 때마다 마을은 한동안 정적에 휩싸였다.

길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장이모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이다. 영화는 도시에 사는 외아들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어머니는 읍내병원에서 마을 장지까지 걸어서 운구하는 전통 장례행렬로 치르자고 한다. 그러나 아들은 관을 둘러맬 사람이 없으니 차로 하자며 어머니와 갈등한다. 왜 어머니는 전통장례행렬을 고집할까? 그 이유는 길과 관련이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이 전부 길에서 이뤄졌다.

그 길은 어머니에게 만남과 첫사랑, 설렘과 그리움, 이별과 기다림의 길이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일꾼을 산다. 그때 아버지의 제자들까지 달려와 눈보라 속에서 관을 매고 어머니가 그 뒤를 따르며 그 길을 걷는다.

오늘은 소나기가 오락가락했다. 더욱 푸르러진, 집 뒤의 벌판 같은 논의 벼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출렁거렸다. 지금 시간은 저녁 12시를 넘어서고 있다. 아직까지도 논의 개구리들이 목청 좋게 울고 있다.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의 그를 향한, 망각을 깨우는 불면의 밤인가.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