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정 교무·포카라교당(논설위원)

▲ 이하정 교무·포카라교당(논설위원)
어느 덧 세월이 훌쩍 흘러서, 갖고 있던 보따리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야할 것 같아, 초라한 책들이지만, 필요한 이들에게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시로 네팔 땅, 한 구석 작은 도서실 방에 모두 부려 놓았었다. 그런데도 책들이 제 자리에 놓이기 까지 여러 해가 걸리다 보니 먼지가 쌓여 있다.

그 가운데, 언젠가는 공부해 보리라는 욕심으로 손닿는 곳에 둔 책이 있어 들여다 보았다. 한 구절에서 눈이 번쩍 떠졌다. "동기연계(同氣連契)의 취지-본계(本契)는 온 인류로 하여금 본래 한 집안 한 할아버지의 자손임을 서로 깨쳐 알게하여 마을 마을 나라 나라에 살고 있는 동포 가운데 심히 빈한한 동포가 없도록 구제하고 배움의 혜택도 주고 질병도 퇴치시켜서 온 인류가 고루 잘 살 수 있도록 대종사님께서 탄생하신 성지 한국에서 먼저 봉화를 든 것이니 전 세계 나라 나라 마을 마을의 모든 동포는 다 같이 이에 공맹(共盟)하고 대동결연하여 하루속히 평등원만한 세계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무심히 그리고 당연하게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구호로만 외우던 삼동윤리. 그 중, 동기연계의 연계는 우리나라 전통에서 나오는 대동계나 향약 같은 공동체 문화인 '계' 의 범위를 세계 인류 공동체로 확산 시키는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동기연계를 대산종사는 '평등세계를 실천'하려는 구체적인 인류구제의 대경륜의 표현이고, 이 경륜의 실천 안이 사대봉공회라는 사실을 비로소 확인했다. 대산종사 <교리실천도해>의 다음 부분은, 정전 최초법어인 수신의 요법, 제가의 요법, 강자·약자 진화상 요법에서, 강·약 진화상 요법을 동아시아의 보편적 경세용어로 사용하는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구체화해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삼동윤리가 평천하의 구체적인 경륜으로 자리매김 되어있고, 그에 따른 구체적 실천 방안도 제시되어 있었다. 즉 동원도리는 각국에 대선학원으로 일원교육, 동기연계는 각국 삼동훈련원으로 일원 훈련, 동척사업은 각국 사대봉공회로 일원봉공(영모원, 만성전)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지금 교단은 미주총부 건설을 시작했다. 이제까지도 훌륭했지만, 앞으로 성공하려면, 우리가 하는 일의 뿌리가 어디이고, 나아 갈 방향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리라. 미주총부와 선학대학을 하도록 하신 뜻을 정전 최초법어 '강·약 진화상 요법'의 구체안인 평천하의 도를 실천하는 차원에서 이해함이 중요하고, 더욱이 지구촌 교화의 방향과 정책 또한 그런 경륜의 맥을 확인해서 이어 가야 한다. '도가에서 맥이 떨어지면 죽는 단다'는 말을 어린 학생 시절 자주 들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경륜의 맥을 잇는가 그렇지 못한가는 앞으로의 시대에 현실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요즈음 지식 사회, 문화 콘텐츠라는 용어를 자주 보고 듣는다. 그 용어 속에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가 인류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그 어느 시대보다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 포함되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인류 사회에 정신적인 영양을 공급할 수 있어야만 살아남는다는 뜻도 되지 않겠는가.

경륜의 맥을 잇는 것은 그 정신적 원천이 내 안에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밖으로 화려한 외관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내면에 그 일의 사상적 뿌리가 살아 있지 못하다면, 본인 또한 정신적인 방황과 더불어 앞으로 나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겠는가.

우리 교단이 미국에 총부와 대학을 갖는 일이 중요한데, 이 일을 앞으로도 크게 성공시키려면, 그 일이 무슨 일을 하자는 것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 그 점검이 더욱 필요하고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 내가 모시고 있던 경전만 먼지가 쌓였기를…. 그렇지만 그런 나에게 한 번이라도 먼지를 털어 볼 기회를 주신 것은 큰 호념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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