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의경 교도·강남교당
    (논설 위원)
문득, 전 지구촌이 해법을 찾기 위해 총력을 경주하는 지구온난화처럼 큰 주제와 우리 교단의 큰 숙제인 교화문제를 비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름지기 큰 문제는 그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이 대체로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환경이나 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올해의 최대 관심사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새로운 국제협력체제가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하는 것이다. 12월 기후변화협약 코펜하겐 회의를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기후변화의 큰 물꼬를 반대방향으로 틀기 위한 세계 각국의 책임에 대해 결론을 내리려 하기 때문이다.

최근 날씨를 보노라면 비록 기상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대로 변해가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장마철 비 내리는 모양도 예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물폭탄이라 칭하는 폭우성 장마도 예전엔 없었던 현상이다. 최근 십수년간의 연평균기온은 최고 더운 해의 앞자리 순번을 모조리 차지하고 있다.

온난화가 심각해지자 배가 다닐 수 없던 북극에 여름철 뱃길이 열리고, 히말라야 설산은 눈 없는 암벽을 드러내고 있다. 태풍도 사나워졌고 농작물도 물고기도 예전의 그 자리를 지키기 힘들어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신음하는 지구라는 경고가 이젠 하나하나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의 노력으로 지구온난화라는 거대한 자연변화를 과연 되돌릴 수 있을까? 비슷한 질문으로 4대 종단으로 반색하기에는 너무 미미해 숨기고 싶은 우리의 교화현황도 과연 대불공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인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 정책의 측면에서 볼 때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는 온실가스 감축정책하고 교화대불공을 이루고자 하는 교단의 정책은 유사한가 판이한가?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놀라울 정도로 판박이다.

먼저 둘은 존재와 존립의 기본문제이고, 또 공익을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하나 개별주체 입장에서는 적당히 대충 넘어갔으면 하는 점도 같다. 중요한 줄은 알겠지만 내가 힘들거나 손해 보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은 그런 문제인 것이다.

수없이 많은 정책들이 협력하여야 온실가스 감축도 교화도 겨우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한두 가지로는 별 효과도 없어 보이고 개별 주체들의 역할은 미미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니 '나 하나쯤이야'하는 공익심 없는 사람이 많이 생기는 바로 그런 문제이다.

종법사님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같은 최고지도자들의 이 일에 대한 의지와 우선순위 설정, 각 국가나 교당이 자의반 타의반 부여받게 될 단위 조직의 목표 설정도 유사하다. 각국 지도자나 각 교당의 교무들은 내부의 문제를 달래가면서 주어진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중간역할을 어렵사리 수행해야 한다. 만약의 경우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장기적으로, 아마도 다음 세대쯤부터 심각해지는 그런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모름지기 교화나 지구온난화 같은 거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기본적인 단계가 있다.

먼저, 정확한 상황진단과 그에 맞는 조직과 제도 등 똑똑한 정책의 생산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때로 상충되는 여러 정책간의 조화는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소아적 이기심으로, 정책간 불협화음으로 일을 그르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본질적이고 가장 힘든 일은 만인의 동조를 얻는 일일 것이다. 대중의 마음을 얻으면 앞 단계의 실수는 고쳐갈 수 있지만 그 반대는 뻔한 결말일 것이다.

마차가 멈췄을 때 소를 치느냐 수레를 치느냐의 질문은 여기선 오히려 간단해진다.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다. 그것이 일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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