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가 그쳤다. 방금 물청소한 초등학교 교실처럼 온 동네가 산뜻해졌다. 집 뒷쪽으로 수십 마지기 논의 벼들이 바람이 불때마다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무릎까지 차올라 멀리서 보면 벌판 같은 그 위로 고추잠자리 떼가 비행한다.

요즘 삶의 무게로 둔해진 내 몸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도 가볍게, 너무도 쉽게 날아다닌다. 정해진 길은 없어 보인다. 희롱하듯 즐기듯 상하 좌우 제멋대로다. 살아서는 고통으로 신음하다가 죽어 비로소 해방된 영혼들이라 해야겠다.

8월이다. 누님의 추억을 전해줬던 돌담 밑 7월의 봉숭아꽃이 하나 둘 떨어지고, 뭔가 허전한 그 자리에 봉숭아 꽃씨를 담은 푸르스름한 솜털의 주머니가 버찌처럼 매달려있다.

유년 시절에는 그랬다. 손가락으로 그 얇은 주머니의 막을 살짝 건드리면 툭하고 터지며 쏟아지는 까만 꽃씨들. 그 꽃씨를 빛이 바랜 신문종이에 정성스럽게 싸서 책상서랍 속에 보관했다가 그 다음 해 봄에 잊지 않고 뿌렸다. 그때마다 나는 어른스러워 졌고 내 마음도 넉넉해 졌다.

요즘 나는 집을 나설 때마다 봉숭아꽃을 바라보면서 그 유년 시절의 순수를 추억한다. 그러나 내 가슴속은 여전히 허전하다. 그래서 나는 걷는다. 아스팔트를 걷고, 숲길을 걷고, 논둑을 걷고, 비포장 신작로를 걷고, 마지막 산길 질마재를 넘는다.

지금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테크놀로지에 점령당해 삭막해진 도시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내 유년 시절에 할머니는 날마다 질마재를 넘었다. 할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 마당 앞 텃밭에서 채소를 다듬어 큰 보따리를 만들었다. 그러면 어머니가 그것을 머리에 이고 앞장서고, 할머니가 그 뒤를 따라가며 질마재를 넘었다. 그렇게 말없이 할머니와 어머니는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에 도착했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비포장 길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나타나는 광신여객 완행버스를 타고 할머니는 읍내에 가고, 어머니는 버스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읍내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약국 앞에서 채소를 펼쳐놓고 팔았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집에서는 할아버지가 질마재를 바라보며 할머니를 기다렸다. 그때마다 내가 마중을 나갔고, 질마재 산봉우리에서 아래를 향해 할매! 할매!를 부르면 저 아래에서 할머니가 숨찬 기침을 하며 올라오고 있었다. 나의 할머니 마중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됐다.

내가 독일에 유학할 때부터 할머니는 치매로 고생했고, 공부를 끝내고 귀국해서 찾았을 때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자네가 누군가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곁으로 가는 길에 할머니는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상여를 타고 질마재를 넘었다.

할머니의 삶이 녹아있는 질마재가 장이모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의 그 길과 오버랩 됐다.

각박한 현재는 흑백으로, 순수가 살아있는 과거는 찬란한 총천연색으로 묘사됐던 이 영화에서 아버지와 함께 그 길을 걷고자 했던 어머니가 다름 아닌 나의 할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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