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도갑 교무·교화훈련부
    (논설위원)
어릴 때 어른들로 부터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고 배웠다. 그런데 나쁘다고 한 친구가 더 인간적이고 좋은 경우가 많았다.

선하고 악한 사람이 과연 따로 있는 것인가? 죄인과 현인이 각각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평소에 가장 인색하다고 하는 이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재산을 다 내놓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가 과연 이기적인가 아니면 이타적인가?

어떤 인간이든지 깊이 들어가 보면 모두가 착하고 선하며 복된 존재이다. 만나는 인연들에게 허물이 보인다면 이것이 자신의 문제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누구에게나 선과 악, 죄와 복이 함께 있다. 여실히 지켜보면 이들 둘은 나눌 수가 없다. 악 속에는 반드시 선이 같이 있으며 죄에는 복 짓는 마음이 하나로 어울려 있는 것이다.

마음공부 하면서 이를 깊이 자각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의 분별을 내려놓는 일이다. 마음을 잘 보지 못하면 쉽게 판단 분별에 빠져서 죄와 악을 제거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 사실은 어느 것 하나도 없앨 수가 없다. 그렇게 하면 더 많은 죄악에 젖어들고 그 속에 묶여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난하게 된다. 반면에 이들을 인정하고 하나로 받아들이면 음양상승(陰陽相勝)하는 진리를 경험한다. 죄도 없고 악도 없으며 고도 고가 아닌 경지를 맛보게 될 것이다.

지금 밖에서는 마음공부가 눈부시게 열려가고 있다. 정신 차리지 않는다면 세상은 우리를 무시하고 외면할 것이다. 단점을 고치고 허물을 없애는 공부를 부지런히 수행ㆍ적공하고 있다면 이는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보조스님도 <수심결(修心訣)>에서 '능히 끊으려는 그 마음이 곧 도적(能斷之心是賊)이라'고 하셨다. 본래 없으므로 제거 할 것이 또한 없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다시금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의 원리이다.

죄와 악이 본래 없다면 이를 문제 삼을 것이 없다. 음과 양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 상응하면서 온전히 나타날 뿐이다. 악은 선이 있어서 나타나고 죄는 복이 있어서 존재한다.

하나를 없애면 다른 하나도 함께 사라진다. 유와 무, 시와 비, 고와 낙 등의 상대적인 것은 모두가 그렇게 의존하면서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무상(無常)하고 공(空)한 것이다.

이제부터 단점을 제거하지 말고 그 속에 분명 장점이 있음을 발견하자. 이것이 마음공부의 기본이다.
자신과 상대의 악심을 뜯어 고치려 말고 그 속에 숨겨진 선심을 찾아서 살려내자. 이렇게 하나로 수용하고 품어 안으면 실제로 오랫동안 묵은 악심이 정화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서로 나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악을 없애려 하면 선도 점점 소멸 된다. 죄를 외면하면 복도 사라진다. 고를 멀리 하면 낙을 체험하지 못한다. 음과 양도 마찬가지다.

공부하는 수행자가 마음을 바로 보지 못하면 자신과 중생 제도의 꽃을 피울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마음을 살피고 발견하는 일에 힘을 다해야 한다.

사람들이 종종 사업이 먼저인가. 공부가 먼저인가를 묻는다. 이는 어리석은 질문이다.
지금은 바깥으로 에너지를 쏟으며 허겁지겁 매달릴 것이 없다. 마음공부 하는 작업에 전념해야 한다.

온통 여기에 정성을 쏟으며 즐겨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사업이 열리고 교화가 물 흐르듯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 모두 천업으로 주어진 정신개벽에 혼을 바치자. 이것 보다 더 시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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