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에 대한 그리움

흙담집 가장 인상적
화려한 꽃담 눈에 선하네

▲ 토석담.

 어린 시절의 고향인 정읍 여우치에서는 허전함이나 산짐승을 막기 위해서 간혹 좀도둑을 방어하기 위해서 해거리로 둘러쳐오던 잡목 울타리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여우치라는 자연 부락은 정읍에서 제일 높은 먹방산이란 산 기슭에 자리잡은 임실땅에는 광산김씨의 일촌이고, 아랫 여우치는 밀양박씨 집성촌으로 임진왜란 때 피난처로 알려져 오고 있다. 아랫마을 여우치는 밀양박씨 30여호가 옹기종기 모여살던 산촌 마을로 우리 큰집은 뒤 울안을 대나무 밭으로 감싸 주었고, 그 외의 집들은 거의가 주변 산에서 잡목을 베어다가 만든 생울타리 담장이었다.

마을 자체가 생활이 어려운 산촌이어서 토담이나 벽돌담은 엄두도 못낼 시절이었지만 어른들이 모두 논밭으로 나가는 농사철에 집을 볼 때는 옆집 살던 상기를 찾아가거나 혹은 앞집 복순이 집을 갈 때도 소위 개구멍이라는 울타리를 통해서 오가던 지름길있었다.

부모님이 이웃집 심부름을 시킬 때도 급행 개구멍을 많이 이용했었다. 그 때는 비록 생활은 어려웠지만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서로간에 고구마, 하지감자, 옥수수, 개떡만 쪄도 앞 뒷집 아주머니의 택호를 불러가면서 나지막한 울타리 너머로 넘겨주던 온정이 있었다. 그런데 현대생활은 그 온정을 뒤로하고 벽돌담이 차단해 버렸다.

그 무렵 생활은 비록 가난했지만 초가 지붕위에는 보름달 같은 박이 열리고, 울타리에는 호박넝쿨이 기어 올라가 울을 넘고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리던 푸근한 한 시절이었다.

▲ 경복궁 자경전 꽃담.
철들 무렵 태인으로 이사해오니 나무 울타리나 돌담은 볼 수가 없고, 거의가 토담집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옛 토성처럼 길게 고삿길을 차지한 태창리 김진사집 큰 손자가 살고 있던 흙담집은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 뒤로 서울로 대학에 진학하여 거닐던 덕수궁 돌담길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거리였다. 특히 사계절 중에 낙엽이 지는 가을 돌담길에 코트의 깃을 세우고 거닐던 산책길은 잊혀지지 않는다. 자경전 서쪽 문자담이나, 마치 누이가 금새 수를 놓은 듯한 국화에 나비가 앉은 꽃담도 눈에 선하다.

낙선재 행랑채의 틈새없는 화방담이나 자연석에 기와를 점선 무늬로 쌓아 만든 해인사의 화방담은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담 중간에 해와 달 그리고 목숨 수(壽)자를 새겨 넣은 법주사 길상무늬 담도 투박한 대로 멋이 있다.

이외에도 용인 민속촌에서 보아 온 싸리나무로 엮어 만든 초가집 울타리의 운치나, 하회마을의 황토흙을 다져 만든 판벽담이나, 옛 사찰터의 집채같은 바위로 쌓아올린 고풍스럽고 위엄있는 담장이나, 서대문 형무소의 으스스하고 스산한 담, 제주도의 나지막한 그리고 구멍이 숭숭 뚫린 돌담, 함라 김진사 댁의 화초담, 익산 총부 탱자나무 울타리 자리에 새로 길게 쌓아 올린 화강석담, 순창 회문산 만일사 앞을 나지막하게 가리운 왕대나무를 쪼개어 그만 그만한 크기로 엮어 만든 대울타리는 너무도 인상적이다.

이제 우리의 옛 속담에서 담장에 대한 사례를 찾아 보고자 한다.

'사흘 굶어서 담 안 넘을 놈 없다.'(배가 고프면 도둑질 안할 사람 없다)
'구렁이 담 넘어 가듯 한다.'(속셈은 엉뚱한데 있으면서도 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담너머 불구경 하듯 한다.'(이웃집에 불이 났는데도 상관하지 않는 사람을 빗댄 말)

이제 금기어를 찾아 보기로 한다.
'담벼락 하고 말하는 것이 낫겠다.'(벽창호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
'여자 웃음소리가 담 넘어가면 안된다.'(여자는 웃되 웃음소리가 크면 안되고 조신하게 웃어야 된다는 말)
'담장은 게으른 놈이 쌓아야 하고, 방아는 미친년이 찧어야 한다.'(담장을 쌓을 때는 몸가짐을 조신해 차근차근 쌓아야 하고, 방아를 찧을 때는 서둘러 찧어야 한다)
'처녀 배부른 것 하고, 담장 배부른 듯 쌓는 것은 안된다.'(시집도 안간 처녀가 배부른 것도 속도위반이라 안될 일이지만, 담장이 배가 부르면 넘어지기 때문에 안된다)
▲ 해인사 토석담은 흙 한 켜 쌓고, 기와 한 켜 쌓고… 진솔한 토담을 이뤘다.
이제 부안지방에서 채록한 구전민요 가운데 댕기타령 한 소절을 옮겨보기로 한다.
댕기 댕기 모본단 댕기/ 열닷냥에 떠온 댕기/ 울어머니 꺽은 댕기/ 요내솜씨 접은 댕기/ 우리오빠 호령 댕기/ 우리성님 눈치 댕기/ 우리동생 새암 댕기/ 우리 종년 욕심 댕기/ 준치 닷되 박은 댕기/ 서광 닷되 물린 댕기/ 삼단 같은 요내 머리/ 동백기름 살짝 발라/ 어리설기 벗겨 내려/ 머리 끝에 질끈 매고/ 담장 안에 널을 뛰다/ 담밖으로 빠졌구나/ 올라가는 선비님들 / 내려오는 한량님들/ 요내 댕기 주었거던/ 주었단 말 하고 가소/ 주었기는 주었다만/ 사랑 안하면 못주겠네/ 사랑값은 내가 줌세/ 너그 어머니 허락편지/ 너그 아버지 가락편지/ 애기 셋만 나면주마.

이 민요는 부안지방 할머니가 불러 주었다. 명절날 담장 근처에서 널을 뛰다가 열 닷냥이나 주고 떠온 모본단 댕기를 담장 밖으로 떨어뜨려 그 댕기를 주은 선비님네 댕기를 돌려 달라고 애걸하니까 나한테 시집와서 애기 셋만 낳으면 주마고 하는 익살스런 연정이다.
▲ 박순호ㆍ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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