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가 해제 되었습니다."
오래된 유화 냄새가 제일 먼저 코를 자극하는 50평의 공간, 그곳에 나는 6년째 산다.

커다란 창들은 이미 널따란 판넬로 대부분 봉인되고, 햇살과 바람이 차단된 사진사의 암실 같은 공간. 하지만 스위치를 올려 전등을 켜면, 일제히 일정한 거리를 두고 벽면을 따라 빙 둘려있는 그림들이 제 빛깔을 내며 소곤거리기 시작하는 작은 미술관.

20℃의 온도와 습도 50%±5%. 최적의 환경이지만, 전시기간을 빼고는 대부분 그림과 나만이 존재하는 도시 속에 섬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가끔은 이 동네에 사는 단골고객들이 오고가고, 지금처럼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아이들이 방학숙제를 하기위해 기웃거리기도 한다. 어제는 밀양에서 올곧게 들꽃만을 고집하는 화가 한 분이 이 무더위에 감색 중절모를 쓰고 나타나 나를 당혹케 했고, 오늘은 근처 유치원 아이들이 오기로 예약 되어있다. 그런데 걱정이 앞섰다.

'현재 전시작품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설치미술도 아니고. 특히 캔버스 상태의 그림이 많아 고가의 작품이 훼손되지나 않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함께 따분하지 않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새벽부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뒤척이기 시작했다. 해답을 찾기 위해 중얼중얼 습관처럼 기도를 드려 보았다. 특별한 묘안을 찾지 못했다. 드디어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긴 복도를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순간 앗차!! 숨은그림찾기를 하면 아이들이 그림에 집중 하고 함께 재미있을 것 같았다. 적중했다. 수 십 명의 아이들은 나의 조바심과는 달리 풀숲에서 바닷속에서 나무위에서 숨은그림찾기에 집중했고. 지금까지 난 항아리라는 형상에 갇혀 오직 항아리만을 보았는데, 아이들은 커다란 항아리 하나를 보면서도 모든 생명들을 그 안에 담아내기도 했다.

똑같은 공간에서 아이들은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읽어냈고, 내가 듣지 못했던 소리들을 찾아냈다. 너무 신기했다. 나는 그림의 고정화된 언어로 표면적이고 시각적인 평면에 매어 있었고, 아이들은 그림 안에서 시간과 공간, 형상을 구분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공부, 본성, 불성을 입으로 읊조리면서도 매순간 배우고 습득했던 관념들이 하나의 기준이 되어 벽을 만들고, 40이라는 긴 나이테처럼 나를 돌돌 묶고 있지는 않았을까?

난 오늘 오랫만에 300호 통 캔버스, 커다란 항아리 그림 앞에 풀~썩 주저앉아 아이들과 함께 색을 이야기하고, 꿈을 이야기하며 돌레돌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청학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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